이희녕 사모 (뉴저지복음장로교회)
겨울이 지나고 이제 봄 햇살이 따뜻해지면 각종 씨를 심습니다. 씨를 심을 때면 누구나 얼마 후면 심은 씨들에게서 싹이 나서 점점 커져 무성해져 잎들도 따먹고 싱싱한 열매들도 따먹는 그림을 그려보며 기뻐합니다. 저는 요즘 온 비로 인해 잎채소들은 춤추듯 무럭무럭 커줘서 집에서 딴 오가닉 채소 따먹는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때 아닌 삶의 행복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생각합니다.
씨를 심을 땐 콩심은 데는 콩이 나고 팥심은 데는 팥이 나오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씨를 심습니다. 늘 그대로 되었기에 이를 의심하는 이는 없습니다. 저는 대학교 2학년 때 지독한 허무주의에서 비관하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났습니다. 그 때 세상적 안정된 삶을 바라보던 나는 죽고 예수님이 나의 삶의 주인인 새로운 사명자로서 보너스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 땅에 주님의 양떼를 찾아 돌보는 하나님나라의 선교사, 대사다”라는 정체성에 자리매김을 하였습니다. 누구든 주님의 튼튼한 양으로 세워주려면 그들의 눈높이와 맞추고 함께하여 그들과 이웃이 됨이 첫 스텝이라는 사역 원리를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왼 뺨을 때리면 오른 뺨도 내놓고, 오리를 억지로 가게하면 10리를 기꺼이 가주고, 억울하게 대신 죄도 뒤집어쓰고 오해도 받으며 모욕을 당하는 것도 감내해야했습니다. 저들의 짐을 대신 져주었으나 오히려 선을 악으로 갚으며, 구해주니 내 보따리 내놓으라고 원망하는 황당한 일도 너무도 많이 만났습니다. 사역하며 탈진도 부지기수로 했습니다. 작은 교회사모라고 무시도 많이 당했습니다. 물질의 손해도 많이 보았습니다. 교회가 적다고 이웃의 큰 교회로 가버린 이들이 자기들 돌봐줄 이는 사모님밖에 없다고 교회는 다시 오지 않으면서 진만 빼는 교인들에게 화가 나긴했지만 “오죽하면 나를 찾으리” 곧 마음을 추스리고 오랜 세월 주님의 양으로 챙겨주고 돌봐주고 든든한 마음의 친구가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저들이 성숙해져 세월이 가니 이웃의 작고 큰 교회의 기둥들로 세워져 은혜롭게 섬기는 것을 보며 감사드리니 우리 하나님께서 “저들의 모습이 네 상이다”라고 칭찬해주셨습니다.
1976년 이후로 개척교회, 작은 교회만 섬기다 보니 안해 본 일이 별로 없고 걸맞는 은사들이 개발되고 올인해 사용하는 바람에 ‘사역기계’(ministry machine)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올인한 사역 중에 EM사역이 있습니다. 1976년 첫 교회에서 EM이라는 개념도 없을 때 EM을 시작하여 많은 어려움을 거치며 지금까지 셀 수없는 EM사역자들을 상담하고 멘토가 되어주고 연합사역 등 여러 모양으로 2세 사역에 임하며 사랑을 주고받는 저들의 사모님, 대모가 되었습니다. 여러 사역에 다른 씨앗의 모습으로 복음을 심은지 이제 40년을 바라봅니다. 저들이 미국 전역과 세계만방으로 흩어져 참으로 든든한 복음 전파의 사역자들로 충성하는 모습을 대하며 긴 세월 과정은 힘겨웠지만 주님께서 거두어들이는 열매들을 바라보는 저의 마음엔 기쁨과 감사가 가득 넘칩니다.
만약 제가 작은 교회사모라고 주눅 들고 내 교회 키우기에만 치중했다면 오늘 설사 내 교회가 소위 대형교회로 성장했더라도 이런 큰 열매를 거두는 기쁨의 날을 맞을 수 있었을까? 사역의 성취욕을 내려놓고 주어진 자리에서 충성함이 하나님을 제일 감동케 합니다. 환경에 좌우되지 않고 내 교회라는 담장을 넘어 주님의 심장을 품은 하늘 선교사로 살았기에 나이의 담장도 넘고, 인종의 담장도 넘고, 언어의 장벽도 넘어 많이 심을 수 있었지 않았겠나.... 그러니 오늘 주님이 계속해 거두어들이시는 열매를 함께 따는 게 아니던가. 주님의 복음의 씨앗은 썩는 것이 아니라 더디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충성하면 반드시 때가 오면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날이 옴을 증거하며 동역자 여러분들, 힘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