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녕 사모 (뉴저지복음장로교회)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9:12,13).
수영을 전혀 못하는 사람이 물에 빠졌습니다. 죽지않겠다고 사력을 다해 허우적거립니다. 이때에 그 사람을 구해주려 손을 잡았다가는 둘 다 빠져 죽기 십상입니다. 구원의 손길을 만났으니 이제는 마음 놓고 돕는 자의 손길에 맡기기보다는 살겠다고 죽을 힘 다해 빠진 물속으로 끌어내리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더 이상 허우적거릴 힘이 다 빠지고 정신 줄을 놓을 즈음이라야 저항을 하지 않아 기운을 빼앗기지 않고 저를 서서히 물가로 데리고 나와 둘 다 살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 자신의 노력으로 해낼 수 있다고 하나님을 밀어내는 사람에게 “인간의 힘은 한계가 있어요, 당신은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해요”라고 손을 내밀면 오히려 자존심이 상해서 선을 악으로 갚으려드는 것이 못난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라고 예수님은 명하십니다. 스스로 자기 의에 빠진 의인들이나 실제로는 하나님을 심히 반항하는 영혼들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기엔 아직 준비되지 않아 스스로 나는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고 겸손해져 고백하기까지는 먼지까지도 털어버리고 그대로 두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의 주님이신데 어찌 손길을 거두라 하시는가? 의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나 본인이 부족한 필요를 인정하고 목이 마를 때 주어져야 귀한 줄 알지, 미리 필요를 보고 주어야 감사는커녕 오히려 불만과 원망을 뒤집어씌우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에 그 때가 오기까지는 손을 잠시 거두고 기다리라 하시는 것입니다.
빤히 길이 아닌 스스로를 해하는 죄 된 길을 보물을 찾겠다고 가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완전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절박하게 병이 낫기를 찾아 헤매일 때는 작은 손길 하나라도 감지덕지로 붙들게 됩니다. 경제적으로 육신적으로 또 인간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모든 상황에서 자신의 한계를 절감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고 부르짖는 사람은 참으로 복된 자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55:6, 7).
어느 곳으로라도 문제의 해결이 보이지 않습니까? 문제는 바라볼수록 끝이 없이 끌어내리는 불안의 수렁입니다. 몰아치는 절망으로 눈앞이 캄캄해지는 지금 이 순간이 곧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시점입니다. 나의 절망이 곧 하나님의 시작이십니다. 반항하고 교만한 생각을 버리고 돌아오면 불쌍히 여기시어 널리 용서해주시겠다고 지금 부르십니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우리 주는 날마다 기다리신다오. 밤마다 문 열어놓고 마음 졸이시며 나간 자식 돌아오기만 밤새 기다리신다오. 채찍 맞아 아파도 주님의 손으로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주시는 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 오오 어서~~.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예수께로 나옵니다. 병든 내 몸이 튼튼하고 빈궁한 삶이 부해지며 죄악을 벗어 버리려고 주께로 옵니다. 하늘의 기쁨 맛보려고 주께로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