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녕 사모(뉴저지복음장로교회)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22).
인간의 영혼에 바이러스가 침투할 수 있는 대문이 의심입니다. 하와가 하지 말라니 더 궁금해지는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조금씩 조금씩 다가 가다보니 바로 선악과 코앞에 서 있습니다. 죄의 가능성이 넘치는 곳엔 언제나 유혹이 가능한 마귀의 손바닥 안입니다.
선악과는 하와에게 완전히 참기 힘든 유혹의 판도라박스입니다. 간교하게 뱀이 하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불난 집에 의심의 화약을 던지니 더 이상 버티지를 못하고 뱀의 유혹하는 질문에 의심으로 나아가는 대답을 합니다. 선악과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에 자신의 의심의 빌미를 넌즈시 보입니다. 이에 거짓말에 명수인 마귀는 하와가 하나님을 의심하는 틈을 보며 쾌재를 올리며 유혹합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않아. 네가 그걸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알게됨을 하나님이 알아서 거짓말한거야”라고 최고는 자기만 갖고 사람에게는 주시지 않는 하나님을 욕심쟁이, 거짓말쟁이로 확신을 가지고 모함합니다.
보통 안경과 색안경(썬그래스)을 바꿔 쓰면 렌즈 색깔대로 보입니다. 탐욕의 색안경을 쓰고 보니 자신이 과연 전지전능 하나님으로 만들어질 것 같은 거짓말에 혹하여 선악과를 금지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자못 의심스럽습니다. 의심의 눈으로 선악과를 바라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정말 하나님만큼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워 보입니다. 마귀가 주는 거짓 확신에 힘입어 탐욕에 삼키운 하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넘게 됩니다. “눈이 밝아진다” 하면 그 어조에는 무언가 내게 없는 좋은 능력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먹고 나니 마귀의 말대로 눈이 밝아진 건 사실입니다. 전에는 자신의 부족이 부끄럽지 않았고 다른 이의 부족도 꼬집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의 벗은 모습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고 다른 이의 벗은 모습이 눈에 너무 크게 들어옵니다. 마음에 전에 없던 새로운 잣대가 생겼습니다. 자기 눈에 좋을 대로 의심하고 가리고 까칠하게 정죄하는 검은 마귀색을 칠한 악한 양심이 생겼습니다.
악한 양심은 자기 의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 잣대로 타락한 사람의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앉아 삶을 좌우하는 인간을 지배하는 운전대가 되었습니다. 자기 이익에 밝아진 악한 양심에 따라 살 때 수치심에 죄의식에 시달리고, 감추고 숨고 의심하고 정죄하고 서로 죽고 죽이며 시달리는 것이 제 눈에 좋을 대로 사는 고뇌 인생입니다. 지옥과 다름없는 내면의 처절한 전쟁터 모습입니다.
문명이 발달해 요즘은 살기가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자동차에 네비게이션이 있어 목적지를 찍으면 중간에 아무리 길을 놓쳐도 놓친 그 곳에서 다시 재 조절하여 안전히 목적지로 안내해줍니다. 하나님말씀을 인생의 네비게이션으로 삼고 때때로 길을 잃고 방황해도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11:6) 말씀처럼 하나님 말씀을 내 인생의 완전한 네비게이션으로 의지하십시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하나님이 상주시는 그 분과 동행하는 형통의 길이 활짝 열립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 하나님의 말씀은 다 나를 살리는 약입니다. 하나님~~ 저희에게 많이 말걸어 주셔요. 나 이제 예수님의 피 값으로 새생명 얻었으니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우리 모두 하나님께 나아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