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마음속의 땅굴

이희녕 사모(뉴저지복음장로교회)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요8:31, 32).

내가 하나님의 심히 기뻐하는 존재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하나님 말씀이 곧이 들리지가않는 아담과 하와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기 전 서로가 기쁘고 소중히 여겨지던 마음은 사라지고 자신의 벌거벗은 그 모습이 부끄럽고, 상대방도 서로 소중하지도 기쁘지도 않고 상대방이 한 일들을 생각하면 부끄럽고 우습게만 보입니다. 자기 입장에서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고 꼬리를 무는 생각을 따라가며 깊어질수록 ‘네 탓이야’가 깊어져 원망의 골이 푹푹 파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곤두박질치게 됩니다.

부끄러운 수치심이 마음을 운전하는 대로 따라가면 수치심이 죄책감으로, 구차한 변명으로, 책임전가의 변명이 책임회피로 원망의 대로를 뚫고 마음 안에 땅굴을 파고 들어갑니다. 마음의 병든 땅굴 안에서 자기 기대의 잣대로 모두를 바라보니 모두가 못마땅하고 그 어느 누구도 기쁘지가 않습니다. 하나님말씀보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깨진 거울들을 바라보며 못났다고 실망하고 비관하고 힘들어하나 그런 지옥의 상태를 견디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새겨놓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못나지 않았다고 반대하는 마음이 내 안에서 실망된 마음을 회복하여 떨어진 자존심을 세우려고 자기 식으로 살 길을 찾아 나섭니다. 자기식의 생존 방식을 우리는 성격이라 부릅니다.

마음은 마치 정밀한 기계의 회로와 같이 작동합니다. 생각이 마음에 떠오르면 감정이 반응을 하고 반응한 희로애락에 따라 의지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지 작동의 키를 눌러 실천으로 옮기는 시스템을 따르도록 마음이 움직입니다. 죽이는 믿음을 따라 마음이 움직이면 죽음의 상태가 임하고 살리는 믿음을 따라 마음이 움직이면 생명의 상태가 임합니다.

마음은 인간을 다스리는 생명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따라가 말씀을 들으면 회복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내가 잘못하나 잘하나 지켜보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가차 없이 심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비정한 심판자로 혹은 잘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무심한 존재라든가 기분 내키는 대로 파워를 행사하는 무서운 하나님으로 등등 잘못된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나를 사랑하는 창조주 아버지로 받아들이는 믿음을 선택하여 신뢰하면 지옥 같은 삶에 빛이 들어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신뢰할 때 뒤틀어진 마음의 눈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뀌게 됩니다. 선악과를 땄을 때 벌거벗은 상태가 부끄러운 수치감으로 덮쳐오던 병든 자존감이 오히려 벌거벗은 그 모습 그대로를 보기에 심히 좋다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소중한 자녀로 기뻐하시는 그 기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자존감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 되는 길만큼 내 안에 병든 인생관, 가치관 등의 변화가 일어나 내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고 환경을 다스려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뚝 서게 됩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서 왕으로 다스리는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됨이 인생 최대의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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