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녕 사모(뉴저지복음장로교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2:17). 하나님이 인간에게 복을 차고 넘치게 주셨습니다. 분에 넘치도록 주신 복 이라 받은 것이 복인지 조차도 잘 모릅니다. 무엇이고 다 제 마음대로 하고픈 대로 다 할 수 있는 저들에게 동산 안에 중요한 두 나무를 주십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라고 선악과는 독약이야 라고 독약이란 팻말을 거셨고 생명과는 먹어도 좋다고 허락해주셨습니다. 너무나 엄청난 유산을 받았지만 그 복의 내용도 그 유익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복이 복인지 감각이 없고 당연히 여겨지고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금지된 선악과에게 유독 눈길이 갑니다.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 한도 끝도 없이 많기도 하고, 그 일을 기뻐하는 아담은 너무도 밖에 일에 바쁩니다. 아담이 하는 일에 마음을 같이하여 꼭 같이 즐거웠다면 늘 아담 곁에 있었을 텐데…. 왜 하와는 먹으면 죽는다는 경고장 붙은 선악과에 그리도 관심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이름조차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게 알맞는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니 아담이 그토록 빠져있는 이름 짓기의 동식물을 알아보는 지식의 능력이 하와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남편이 그리 신나하는 것 보고 있노라니 하루 이틀이지 내가빠진 나의 일은 아니니 재미도 없어지고 심심해집니다. 하와의 관심이 남편이 그리도 기뻐하는 생물계에 대한 지식의 능력보다는 선과 악을 아는 능력이 점점 궁금해지고 쏠립니다. 마음에 탐심이란 소리가 목소리를 점점 높이니 점점 선악과나무 곁으로 다가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효력이 있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 말씀하셨습니다. 하와의 이런 마음을 아는 마귀가 탐심의 소리가 하나님의 경고보다 더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이도록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 진리가 아닌 것으로 끌어 내리는 의심의 날개를 달고 드디어 손을 뻗쳐 선악과를 따 먹는 순간 하와에게 일어난 일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에게 임한 죽음의 상태인 것입니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던 그의 의식 상태에 먹구름이 드리워집니다. 자신이 벌거벗은 사실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던 수치감에 정신이 없고 선악과를 먹으면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억이 나니 죽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너무도 혼자 죽는다는 것이 무섭습니다. 감당 못하게 올라오는 자신의 벗은 모습이 부끄러운 마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에 대한 죄책감, 받을 벌에 대한 무서움. 이런 마음의 상태가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죽음의 상태인 것입니다. 생명줄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 손으로 끊어내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앞가림을 해야 하는 삶의 내용이 기쁨에서 고통으로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할을 하려는데 능력이 따라주지 않으니 평안하던 마음에 염려, 불안, 초조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지 않으십니다. 스스로의 탐심에게 미혹되어 주어진 복조차도 유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입니다(약1:13-15). 마음이 원하는 대로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탐심의 선악과를 딸 때 하와가 만난 죽음의 상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구구절절 유효합니다. “네가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하나님의 법을 피해갈 수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임한 고통 속에 하나님을 바라보면 구원의 길이 열리니 부끄럽고 무서운 감각덕분에 인간의 한계를 깊이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인생을 복으로 알게 해주는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