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데오리(Deori)

24,000명의 데오리인들은 인도 동북부를 흐르는 브라마푸트라 강을 따라 주변에 거주한다. 그들은 주로 아쌈주, 나갈란드주, 아루나찰 프라데시주에 살고 있다. 데오리인들은 티벳-버마 언어군에 속하는 데오리어를 사용한다. 데오리인들은 추티야(Chutiya) 민족 집단 네 분파 중 하나이며, 동부 보도-가로(Bodo-Garo)족과도 관련이 있다. 미얀마와 티벳을 지나 인도에 와서 가로와 카차르 고지에 정착한 몽고인들은 보도인들을 괴롭혔다고 한다. 그 후에 보도인들은 많은 씨족 단위로 나뉘어졌으며, 각기 다른 집단의 이름을 갖게 됏고 그 중의 하나가 데오리다. 데오리인들은 보기 드물게 종족의 동질성을 유지해왔다. 그들은 다른 종족에 비해 외모가 몽고인을 많이 닮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보도 부족과의 인종적 혼합이나 다른 종족과의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낙천적이고 쾌활하며 자유를 사랑하는 사나운 전사들이다.

삶의 모습

데오리 지방의 산업발달은 매우 제한적이다. 우선은 인도 동부지역이 나머지 인도 땅과 어느 정도 격리돼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또한 운송체제가 열악하고 작은 지역시장만이 있을 뿐이다. 그 결과 데오리인들은 생존을 위한 활동이 농업에 제한돼있다. 관개시설을 갖춘 논에서 벼를 키우는 것이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화전법(slash and burn)을 사용해 이동하면서 경작을 한다. 들판을 불태운 후 재속에 씨를 뿌리고 일이년 동안 농작물을 수확하며, 그 후에 다른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결과적으로 산허리에 자연적인 열대상록의 숲으로 이루어진 초목은 상당한 지역이 파괴됐고 대나무 넝쿨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데오리인들은 강둑을 따라 드문드문 마을을 이훠 살고 있다. 집은 강에 접해 있고 이엉지붕에 대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건물은 나무나 대나무 기둥을 이용해 땅에서 4-6피트 떨어져 있어 집 아래 공간은 염소, 돼지, 닭을 키우기 위한 공간이 된다. 데오리인들은 위생개념이 부족하다. 데오리인들의 사회적 특징 중 하나는 대가족 전체가 한 지붕아래 사는 것이다. 그들은 가족수가 늘어감에 따라 집을 확장하며, 간혹 100명 이상이 한 집에 살기까지 한다. 이들 대부분은 모두 동족결혼을 하는데, 이러한 관습을 통해서 독창적인 문화를 유지해왔다. 신랑은 신부의 가족에게 전통적으로 치루는 신부값을 지불해야 하는데, 만약 그가 가난하다면 일정 기간 동안 처가집을 위해 노동력을 제공해야만 한다. 데오리 혈통은 부계를 따라 전해진다. 아들들은 상속재산을 균등하게 나눠 갖지만 딸은 유산에 대한 권리가 없다. 데오리의 사회구조는 마을의 평의회 아래 조직되며 평의회의 구성원들은 높은 도덕기준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신앙

과거에 데오리인들은 추티야의 사제들이었다. 근래까지도 그들은 개종을 적대시하며 그들의 언어를 고집하고 돼지와 닭을 제물로 ‘대모여신’(mother goddesses)을 달래는 등 그들이 본래 가졌던 종교를 계속 유지한다. 오늘날 불교도도 있고 고대의 종교와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나 데오리인들은 주로 힌두교도다. 현재 사제 계층은 전혀 없다. 그래서 종교적 의식은 지금까지도 보통 데오리(deoris)라고 불리는 마을의 장로에 의해 행해진다. 힌두교 전체에서 숭배되는 신들뿐만 아니라 가족의 신과 자연의 신들을 숭배한다. 그들은 땅, 하늘, 공기, 불의 신을 강조한다. 지역의 사당은 없으며 가족과 마을의 신은 따로 개별적으로 숭배된다.

필요로 하는 것들

현재 데오리 가운데 사역하는 선교사는 없으며 그들의 언어로는 말씀 한 구절도 번역되지 않았다. 그들에게 헌신적인 기독교 사역자가 필요하다. 창조자보다는 창조물을 숭배하는 속박으로부터 데오리인들이 자유케 되는 것을 보기 위한 첫걸음은 기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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