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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길라키(Gilaki)

길라키는 카스피해(Caspian Sea)를 따라 이란의 북쪽에 거주한다. 길라키 처음에는 길라안 지방(Gilan province)에 위치했다. 길라키 민족이 220만이 넘었음에도 그들의 고전문화언어(길라키 또는 길라니Gilani)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오늘날 교육을 받은 길라키 인들은 이란의 국가공용어인 팔시(Farsi)를 사용한다. 1977년 길리안 지방의 가장 큰 도시인 라시트에 대학이 세워졌다 길라안 지방(Gilan province)은 엘브즈산(Elburz Mountains)과 카스피해(Caspian Sea) 사이에 위치한 평지다. 카스피해(Caspian Sea)의 바람에 의한 습기는 산에 막혀 습하고 따뜻한 기후로 울창한 숲이 있다. 여러 해 엘브즈산(Elburz Mountains)은 길리안 지방(Gilan province) 거주민을 침입자들로부터 보호하고 있다. 침입집단은 멀리서 지배하다가 1921년 이란과 평화조약으로 반환됐다.

삶의 모습 길라키 경제의 기본은 농업이다. 쌀, 차, 담배를 재배하며 누에도 기른다. 1970년대 주요농업운동은 오일 붐의 결과로 만들어진 대규모 투자유입에 의해 장려돼 대규모 쌀 산업이 소개됐다. 라시트의 도시는 농업재배지역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지역의 견직물, 비누, 유리를 생산하고 상업적으로 분배, 제조하는 요충지가 됐다. Quality 도로는 이들과 다른 제품들을 분배하면서 라시트와 이란의 다른 지방을 연결한다. 길리안 지방의 건축물은 독특하다. 숲으로 우거져 목재건축 재료가 풍부하기 때문에 자연적이다. 이 지역의 특징은 베란다가 보통 목조건물의 측면에 세워져있다. 거주민은 대부분 이란과 그들 자신의 세력(이해관계)을 동일시한다. 어쨌든, 그들은 종종 저항과 개혁운동의 원천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1차세계대전후 길라키는 그들 자치구역을 위해 국가의 개혁과 독립을 요구했다.

신앙 역사는 AD50년쯤에 사도 바돌로매가 이곳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비록 기독교가 강한 존재였지만 지금은 대단히 약하다. 오늘날 길라키는 실제적으로 100% 무슬림이다. 그들은 이트나 아샤리(Ithna-Asharis)이라고 알려진 이슬람 계파에 속한다. 이슬람은 예언자 모하멧의 가르침을 기초로 코란, 이슬람의 경전은 가브리엘 천사가 모하멧에게 준 것으로 전해진다. 무슬림으로서 길라키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예언자, 선생, 좋은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또한 모든 사람은 죽은 후에 그들의 행동에 따라 평가받는다고 믿는다. 그들은 그들의 선행과 코란의 지식에 의해 심판받을 것이라고 믿는다. 길라키 무슬림은 이슬람의 다섯 가지 기본 가르침 또는 이슬람의 다섯 기둥(pillars)을 고집한다. 이것들은 알라가 유일신이라는 고백과 모하멧이 예언자라는 것, 매일 다섯 번 기도하는 것, 많은 구제헌금을 하는 것, 메카를 순례하는 것을 포함한다.

필요로 하는 것들 길라키의 문화언어는 구전이다. 1940년대에 길라키 성경을 번역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프로젝트는 포기됐다. 이 고대 언어를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마도 크리스천 언어학자들은 라시트에 있는 대학에서 이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일하는 것에 문이 열려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단 하나의 선교단체가 이란의 220만 길라키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불행히도 예수영화나 크리스천방송 모두 길라키 언어로 이용할 수 없다. 또한 길라키 성경이 없기 때문에 성경을 이용할 수 없다. 기도만이 길라키 사람들이 복음에 접하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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