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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사에크(Saek)

사에크(타이 세크)족은 라오스 중부의 메콩강 부근에 거주하며 일부는 태국 북동부와 베트남 국경 부근에 산다. 사에크족은 사에크라고 불리는 디악(Diac)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북부 타이어계에 속한다. 많은 사에크족 사람들은 라오스어도 함께 사용한다. 끊임없는 중국인들의 압력으로 타이족은 중국에서 남쪽으로 이주했고 그러면서 또한 많은 종족들을 정복했다. 13세기경 마침내 라오스 땅에 정착했는데 다른 종족들과 마찬가지로 사에크족도 광범위한 문화적 접촉을 경험하면서 라오족과 타이족 문화에 동화돼갔다. 여러 차례 전쟁의 역사를 거친 라오스는 베트남, 러시아, 중국의 정치적 경쟁의 대상이 됐다. 이러한 격동의 역사를 거치면 라오스인들의 분열이 시작됐고 또한 태국도 정치적 쿠데타와 소요를 겪으면서 많은 정치적 변화들을 경험했다. 수년에 걸친 처절한 전쟁들이 사에크족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삶의 모습

사에크족은 사회 전반에 걸쳐 타이와 라오족문화를 흡수했다. 그러나 잘 보존된 사에크 여성들의 “원형 춤(round dances)”은 여전히 사에크족만의 독특한 문화적 특성을 잘 나타낸다. 사에크족의 가옥은 전형적으로 대말 위에 나무나 대나무로 지어진다(고상식 가옥). 집집마다 가금류(닭, 돼지, 염소등)들이 고상식으로 지어진 집 아래 공간에서 자유롭게 키워진다. 농지는 보통 주거지와 인접한 곳에 위치한다. 쌀이 사에크족의 주요 농작물이기는 하지만 자체 소비와 판매를 위해 다양한 다른 농작물들도 재배한다. 물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는 일도 중요한 활동에 속한다. 사에크족은 몬순기(우기)에 쏟아지는 강우량만으로 논과 밭에 필요한 물을 충당한다. 사에크족 남성들은 씨뿌리기 위해 논밭을 경작하고, 집을 짓고, 물고기를 잡고, 사냥을 한다. 반면 여성들은 논밭의 잡초를 뽑고 추수를 도우며, 상품으로 판매할 것들을 나른다. 아주 극소수의 사에크족만이 도시로 이주한다. 그들은 라오족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면서 고기와 야채들을 옷이나 소금과 교환한다. 사에크족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단위는 촌락이다. 각 촌락들은 각기 독립적이며 중요한 사안들을 결정하는 수장이 마을마다 있다. 부계 중심의 핵가족 또한 사에크족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라오스에 살고 있는 소(So)족과 통혼하는 것은 이미 사에크 사회의 일반화된 풍습이다.

사에크족은 라오스 사회의 주류계층에서 격리돼있기 때문에 보다 발달된 문화, 경제, 교육 기회를 항상 갈구하고 있다. 1950년대 이래로 라오족, 북부베트남, 중국인들의 지원을 힘입은 공산주의 군대가 촌락민들의 생활을 혼란케 했다. 정부군과 공산주의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계속되는 전투로 사에크족 사회는 지울 수 없는 전쟁의 상처를 갖게 됐다.

신앙

주변국들의 강한 불교적 영향에도 불구하고, 라오스의 사에크족 대부분은 자신들의 전통 민속종교를 지키고 있다. 예를 들면 조상숭배는 아주 보편적인 현상이다. 조상신들이 병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제사를 통해 이 영혼들을 잘 달래야만 한다. 자연계에 속한 다양한 영혼들의 존재를 확신하면서 또한 각 촌락마다 “수호신(guardian spirit)”이 있다고 믿는다.

필요로 하는 것들

1980년대 이래 라오스와 베트남 공산군대의 압제는 태국 북동부 지방에 혼란을 야기 시켰다. 특히 타이 사에크족이 많이 살고 있는 나콘파놈(Nakorn Panom) 주에 큰 타격을 주었다. 사에크족 사람들은 라오족이나 태국정부보다는 자신들의 촌락에 깊은 충성심을 갖는다. 따라서 정부는 사에크족이 라오스와 깊이 관계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사에크족은 전쟁의 상처들을 치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부나 정부관계자들을 대할 때는 보다 나은 교육과 정치적 지혜가 필요하다. 라오스와 태국에 사는 수천명의 사에크족을 위해 사역하고 있는 선교단체는 한 단체뿐이다. 현재 사에크어로 된 성경이나 기독교방송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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