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브라후이(Brahui)


파키스탄에 230만의 브라후이인의 다수가 사는 반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을 따라 이란 동남부에 거주하는 브라후이족은 15,000명 정도다. 브라후이족은 그들의 가축 떼를 위해 목초지와 물을 찾아 종종 국경을 넘나들기도 한다. 일부 부족들은 수년 동안 한 지역에 머물러 살다 지역을 옮겨 이사해서 살다 또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생활을 반복하기도 한다.

브라후이족은 1600년대에 권력을 잡기 위해 힌두 왕조를 전복시켰다. 1700년대 나시르 칸(Nasir Khan) 시대에 그 연합체는 절정에 달했다. 오늘날 브라후이인들은 29개 부족으로 구성되며 이들 중 8부족이 부라후이의 진짜 핵심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브라후이족은 그들이 브라후이디어(Brahuidi)라고 불리는 드라비다어(Dravidian lanquage)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들의 이웃인 푸쉬툰인(Pushtun), 발루치인(Baluchi)과 구별된다. 언어학자들은 이 브라후이족이 남부 인도의 드라비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1000마일이나 떨어져 살면서 어떻게 관련됐는지 알아낼 수 없었다.

 

삶의 모습

아프가니스탄의 브라후이족과 마찬가지로, 이란의 브라후이족 대부분은 주로 유목생활을 하며 그들의 가축 떼를 위한 물, 적절한 온도, 강우, 목초지를 따라 고지대와 저지대 사이를 이동한다. 이들은 45마일 이상 떨어진 우물들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이동하기도 한다.

고산지에서의 겨울은 얼음이 얼고 춥다. 그런 계절에 부라후이족은 평야에서 산다. 이들은 2-3월에 새끼 양들이 태어난 후에만 산지로 간다.

브라후이족에게는 복수의 법 이외에는 법이 없다고 하며, 강한 사막의 사람들이라고 하는 사나운 부족으로서의 명성을 가지고 있다. 유년시절부터 이들이 살고 있는 환경의 열악함에 대해 이들의 저항력은 점차 커져간다.

브라후이 양치기들은 그들의 가사 일을 협력하기 위해 "칼크(khalks)"라고 하는 모임을 조직했다. 각 칼크는 상주하면서 일하는 직업적인 한명의 양치기와 한 무리의 양떼로 구성된다. 이 상주 양치기(resident shepherd)는 양을 500마리까지 담당한다. 이것으로 인해 어른, 아이를 포함한 남자들이 밀수확을 위한 마을농장으로 가서 일할 수 있기 때문에 브라후이인에게 경제적으로 이익이 있다. 상주 양치기는 남자들을 시켜서 가축을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다른 브라후이들과 야영지의 위치나 양떼들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칼크" 이용으로 인해 브라후이족은 전문적인 양치기가 됐다. 이들은 양들을 함께 방목할 수 있는 최적 숫자를 알아냈고, 양들이 숫자가 적은 조건에서 흩어져 돌아다닐 때 편안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양의 수가 500마리 이상으로 늘어났을 때는 양치기는 그룹을 나눠서 새로운 "칼크"를 형성하기 위한 천막집을 만들어 이동한다.

결혼은 가족 내에서 중매로 이루어진다. 가끔 친척이 아닌 경우에 사랑하는 두 사람의 희망을 고려하기도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아버지 쪽의 사촌과 결혼하기를 바란다. 남자들은 여러 명의 아내를 취하나, 소요되는 경비 때문에 이 관습이 제한받곤 한다. 이혼은 브라후이족에서 거의 없다. 전형적인 가정에서는 결혼한 아들이 부모와 함께 산다. 아버지가 죽은 후에도 형제들은 장자의 통솔아래 하나의 재산을 가지고 함께 산다.

부족(The tribe)은 브라후이족의 정치적인 기본단위다. 부족들은 부자승계(patrilineal descent)와 정치적 연합에 그들의 기초를 두고 있다.

 

신앙

대부분의 브라후이족은 수니파 이슬람교도들이다. 이들은 신앙심이 강하고 이슬람의 다섯 가지 의무(기도, 금식, 자선, "알라는 유일한 신이며, 무함마드는 그의 선지자다"라는 고백, 메카로의 순례여행)에 충실하다.

 

필요로 하는 것들

현재, 한 선교단체가 이란의 브라후이족을 목표로 사역하고 있으나 이들의 언어로 된 기독교 자료가 매우 적다. 이들에게는 중보기도와 더 많은 복음적인 자료들, 그리고 이들의 거친 유목민적인 생활양식에 기꺼이 적응해 이들 사이에서 일할 일꾼이 필요하다.

 

05.0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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