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교회
월요일 아침. 약간은 설레는 마음으로 청년들과 함께 남부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22마일 떨어져 있는 휴양지 산타 카탈리나 섬을 가기 위해서 롱비치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계획과 하나님의 계획은 달랐습니다. 좀 더 많은 청년들과 함께 가시기를 원하셨는지(?) 카탈리나 섬을 가지 못하는 돌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우리는 카탈리나 섬은 다음으로 미루고 롱비치에 있는 영국 조지 5세의 왕비 이름을 따서 지은 초호화 여객선 퀸메리호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우리는 웅장한 퀸메리호를 세밀하게 구경했습니다. 퀸메리호를 구경하고 나서 이 배가 31년간 운항하고 나서 퇴역(?)되었다는 역사를 보고 좀 아쉬움과 의문이 생겼습니다. 왜 퀸메리호는 1936년에 향해를 시작하여 1967년까지 약 31년 정도밖에 운항하지 못했을까?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운항의 채산성이 맞지 않아서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사람들의 수송 수단이 배에서 비행기로 옮겨지기 시작합니다. 1950년 대에는 100만 명 이상이 배로, 50만 명 정도가 비행기로 대서양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1960년 대에는 400만 명 이상이 비행기로, 60만 명 정도가 배로 대서양을 건너게 됩니다. 시대의 변화 앞에서 퀸메리호는 어쩔 수 없이 퇴역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퀸메리호는 시대의 변화로 인해서 운송 수단으로써는 가치가 떨어져 퇴역하였지만, 퇴역 후 55년 동안은 사람들에게 기념비적인 모습으로 기억되고 관광 상품의 가치로 역할을 해왔습니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언젠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게 되고, 교회들도 시대의 변화 속에서 존립의 도전을 받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단지 생존을 위해서 우리 자신과 교회가 몸부림친다면 퇴출 또는 퇴역 후에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기념비적인 모습으로 서있을 수가 없습니다. 퀸메리호는 수송수단에서 기념비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남아있듯이 우리도 역사의 뒤로 물러났을 때 신앙의 후배들에게 신앙의 자취를 남기는 믿음의 사람으로 기억이 되어지고, 교회도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드러내는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결코 쉽지 않은 도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때로 섬김의 자리에서 물러난 후 자신의 영적 교만과 잊힘의 불안감으로 인해서 자신이 이룩해 온 모든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들을 모두 잃어버리는 경우를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교회는 세월이 흘러 리더십의 변화가 있어도 계속해서 좋은 교회로 기억이 되고 있지만, 또 어떤 교회는 불행하게도 지도력의 교체 속에 싸우는 교회로 인식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발자취, 섬김의 흔적들을 천국에 뿐만 아니라 이 땅에도 남기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수고를 다 내려놓고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을지라도 이 세상에서 누군가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교회와 성도를 섬기었는지 기억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입술을 통해서 나의 믿음이 소개되고 도전을 주는 인생이라면 믿음의 성공자입니다. 아무리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을지라도 결코 패배자가 아닌 축복받은 삶의 승리자입니다. 바울이 당당하게 자신의 육체에 예수의 흔적이 있다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섬기는 교회도 예수의 흔적을 신앙의 유산으로 남기는 기념비적인 삶,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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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3.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