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버림받다

강인국 목사

(미시아나한인교회)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일곱 마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씀들은 비록 짧지만 태산보다 무겁고 심해보다 깊으며 세상의 모든 고통보다 혹독하다. 그리고, 그 짧은 주님의 말씀들은 기독교의 핵심 진리들을 함축하고 있다.  그 주님의 말씀들 중에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는 듣는 사람에 따라서 오해를 하기도 한다. 우선 그 당시 주님의 십자가 주변의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오해했다.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며 하나님을 불렀는데, 군중들은 예수가 엘리야를 부른다고 오해했다(마27:46-49).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선입견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한다. 탈무드의 전승처럼 유대인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 엘리야를 부르면 엘리야가 와서 도와준다는 말을 신봉했기 때문에 그렇게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 말씀을 다르게 기록했다. 당시 사회는 네 종류의 글자와 언어가 사용되었다. 빌라도가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걸었던 패에는 “히브리와 로마(라틴어)와 헬라 말”(요19:19) 로 기록되었고, 그 당시 사람들의 공용언어는 아람어였다. 그래서 당시 사회는  소통에 있어서 상당히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로 인하여 예수님의 짧은 외침은 각자의 언어적 수준에 따라서 다르게 들렸을 것이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엘로이 엘로이”(아람어)라며 외쳤다고 적었고, 마태는 예수님이 “엘리 엘리”(히브리어)라며 말씀하셨다고 기록한다. 한글성경은 둘 다 “엘리 엘리”로 통일하여 기록하고 있지만, 원어와 영어 번역본에서는 구별하여 기록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그 의문은 이 글의 후반부까지 잠시 묶어두자.  

후대의 어떤 신학자들은 예수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그렇게 소리쳤고 그래서 예수는  메시아로서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슈바이처 박사는 “예수의 생애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가졌고 목회도 하였다. 그는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원망함으로서 메시아로서 실패했다고 썼다. 그리고 그는 그 이후에 다시 의학을 공부하여서 의학박사가 되었으며 의료선교사로 헌신하였다. 그 때 그는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걸어가신 희생과 봉사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면서 자신의 전 삶을 아프리카에 바쳤다. 아마 슈바이처 박사는 젊어서 그 논문을 썼지만 그 이후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회심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그리고 어떤 성경 주석가들은 말하기를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성품과 사람의 성품, 둘 다를 가지고 계시는데 주님이 인간적인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외친 소리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단순히 예수님께서 인간적인 고통을 참지 못해서 외친 비명으로만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예수님은 시편 22편을 아셨고, 그 시가 자신의 십자가 고난을 예언하는 시임을 아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시편 22편을 인용하시며 구약의 예언이 성취됨을 선포하셨던 것이다. 이에 마태는 구약 학자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엘리 엘리”라고 소리치셨다면서 다소 해석적으로 기록했던 것이다.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육체의 감각으로 느꼈던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표현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우리가 시편 22편을 읽으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어떤 고통과 두려움을 느끼셨는지, 주님께서 어떤 절망감과 고독감을 느꼈는지 알 수 있다. 

실로 주님은 십자가에서 완전히 버림을 받으셨다. 실로 주님은 십자가에서 철저히 고통과 저주 속에 버림 당하셨다. 그 십자가는 내가 달려야 했던 십자가이고, 그 저주는 내가 치러야 했던 저주였고, 그 비명은 내가 질러야 했던 비명 소리였다. 

주님께서 우리 대신에 그렇게 철저하게 버림을 받으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취함을 얻었다. 

dik0184@yahoo.com

04.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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