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장로교회)
목사님이 열심히 설교를 하시고 계셨습니다. 성도들의 이해를 돕고자 재미난 조크를 하십니다. “아프리카 어느 나라 왕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딸을 위해 뭔가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주고 싶었습니다. 고민을 해봐도 이미 다 가진 딸에게 줄 것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고민하다 결혼할 때가 다 되었으니 용감하고 믿고 의지할 만한 청년을 뽑아 혼인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왕은 온 마을에 방을 내리고 왕궁 앞에 있는 큰 호수를 헤엄쳐 건너오는 청년을 사위로 삼아 부마로 만들겠다 했습니다. 온 나라의 용감한 청년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호수를 건너가려 엄두를 내지 못하고 머뭇거립니다. 이유는 호수에 식인 악어들을 풀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망설이고 있는 그때 어느 청년이 풍덩 뛰어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청년은 목숨을 걸고,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악어들을 떼어내며 호수를 가로질러 맞은편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올라갔습니다. 이 용기에 모인 무리가 환호하고, 이 모습을 지켜본 왕도 치하했습니다. 그리고 공주와 혼인을 허락하노라 공포했습니다. 그러자 청년이 손을 흔들며 헐떡이는 목소리로 말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나를 호수로 밀었습니까? 나는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이 예화가 마치자 성도들이 모두 웃으며, 반응했습니다. 목사님은 이때다 싶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로, 사명을 받은 사람들로 이렇게 등 떠밀려서 하면 되겠습니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최소한 자발적으로 신앙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을 내어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입니다. 참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많은 분이 접해 보셨을 예화이고 상황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등 떠밀린 청년을 보고 싶습니다.
아니 등 떠밀린 성도들과 사명자들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새해가 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교회에서 진행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사역자든 성도든, 자신이 원했던 그렇지 않던 어떤 자리에 세워질 때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원망을 하시거나 그냥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의 모범이 되시는 바울 사도의 모습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여러 번 자신이 하고 싶고 가고 싶었던 곳에 대해 저지를 당하고 다른 곳으로 행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롬15).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향해 하나님께서 문을 여시고 기회를 주실 때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에 열심을 다했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복음의 기회를 부름의 상을 향해 가는 걸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로마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나는 분명히 주님께서 등 떠미신 일이었으리라 믿습니다. 조금 과한 상상일까요? 로마로 가는 일이 바울이 원하는 일이지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당시에는 주님께서 바울에게 맡기신 일이 예루살렘을 향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 생각이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름이니라…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55:8-9)고 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뭘 할 수 있고, 없고 가 아니라 내가 어떤 일을 맡고 그만한 위치에 세워질 때 겸손하게 누군가 나를 밀었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목사님인지, 장로님인지, 주변 나를 아는 사람인지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분명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시간에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나를 등 떠밀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밀어 이곳에 세우신 분이 붙드시고, 능력 주셔서 감당케 하시고, 주의 영광에 동참케 하시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용기 있게 등 떠밀린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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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