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갈등을 다스리려면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말세의 특징으로 세상은 갈등이 범람하게 될 것을 예고하셨다. 갈등은 너와 나의 질서나 조화와는 상관없는 불협화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모니를 이루지 못하고 항상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현대교회의 특징은 감사와 찬양 외에는 잠잠해야하는데 불협화음이 많다는 사실이다. 불협화음은 극단적 이기주의에서 일어난다. 이웃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하고 나를 앞세우는 내 중심의 사고방식을 절제하지 못함으로 인한 부조화를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감추고 나를 숨겨야하는 신앙생활에서 탈피하여 나를 앞세우고 나를 드러내려는 교만한 의식의 발현으로 말미암음이다.

‘갈등’이라는 어원은 전혀 해결될 수 없는 의미에서 출발한다. 이유는 칡과 등나무는 평생을 같은 나무를 타고 올라가지만 만날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동체의 갈등은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유는 하나님의 공동체는 개성이 다르고 기호가 다르고 삶의 다양한 관습을 가진 자들이 모인 단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공동체는 항상 하나 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으로 죄 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수용한 사람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흠이 많은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용납하여주셨고 자녀로 불러주셨다. 우리에 대해 항상 날카롭게 비판하시고 판단하실 분은 오직 주님이시다. 주님은 완전하신 분이요, 지극히 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거룩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용납하여주셨다. 당신께서 죄인을 위해 흘려주신 거룩하신 보혈로 우리의 흉악한 죄를 가려 주셨고 죄를 인정치 않으셨다. 그래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도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게 하여주셨다. 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그렇다면 참으로 주님의 부르심 받은 자녀라면 삶의 패턴이 달라져야 한다. 즉 우리의 눈은 전면에 달려있기에 고개를 들기만 하면 상대방을 보도록 되어있다. 그래서 구조적으로 비판의식이 발달하게 되었고, 상대방의 작은 티를 면밀하게 파악하도록 되어있다. 그럼에 비해 나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보지 못한다. 아침이나 저녁에 씻고 우정 거울 앞에 서기전까지는 말이다. 거울 앞에 선다 해도 표피만 볼 수 있고 내면은 보지는 못한다. 그래서 내가 의식하는 나와 하나님께서 보시는 나는 간극이 크게 된다.

이런 사실을 깊이 인식할 때 상대방을 용납할 수 있게 되고 갈등은 극복할 수 있다. 갈등은 나를 보지 못하고 상대방만 보게 됨으로 일어난다. 사탄은 이런 인간의 구조적인 약점을 통해 유혹한다. 내 속의 ‘비방’이라는 부패한 속성을 무기로 기회를 엿보고 활용한다. 그러나 성도는 속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용납하신 자를 내가 어떻게 비평하고 폄론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자아를 확립하는 길을 갈 때 공동체의 갈등은 줄어들게 되고 작아지게 된다.

성도는 말세를 살아가면서 항상 우리의 시야를 내게로 돌려야 한다. 우리는 일생을 살면서 너무 많이 상대방만을 집중적으로 보며산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제부터는 나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나를 관찰하고 나를 살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이웃과의 갈등은 점점 작아지게 되고 사라지게 된다. 그 때 이웃이 소중하게 되고 진정한 사랑의 소통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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