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마음을 테스트하시는 하나님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오래전에 연주회를 갔다가 소프라노의 피아닛시모에 큰 전율을 느끼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드라마틱한 소리에도 감동을 받지만 작고 가늘지만 온 에너지가 집중되어있는 철사 줄 같은 소리는 더 깊은 감동의 세계로 이끈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그런 소리를 내게 될 때 온 청중은 호흡을 멈추고 연주자에게 끌려가다가 연주자의 긴 호흡을 멈춤과 동시에 청중도 깊은 숨을 몰아쉬며 폭포소리와 같은 함성과 함께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낸다. 이런 면을 통하여 청중들은 성악가의 대단한 기량을 칭찬한다. 역시 하나님은 어떤 순간에 우리의 마음이 어떤지를 살펴보시고 우리를 평가하신다. 친구를 알려면 고난에 처해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집안 아저씨가 계셨는데 6,25전쟁 중에 내무서원에게 끌려가게 되었다. 그때 친구는 이 사람은 많은 식구를 거느리는 가장이고 나는 끌려가도 가정적으로 크게 문제되지 않으니 나를 대신 끌어가라고 하여 극적으로 살게 되었다. 친구는 그 후 영영 돌아오지 못했고.... 이런 사람이 진실한 친구라고 말할 수 있지 싶다. 이런 친구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행복한 인생이다. 그러나 우리는 날 위해 죽으신 친구 예수그리스도가 계시니 얼마나 행복한 인생인가!

하나님은 때때로 자녀 된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시기 원하신다. 본문 대하32;27이하에 보면 히스기야 왕은 부와 영광이 지극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기 때문이었다. 또한 히스기야 왕은 역사적 큰 수로사업을 이룬 왕이다. 그는 기혼의 샘물을 예루살렘에 끌어드린 터널공사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산위에 건설된 예루살렘의 식수의 문제를 해결했다. 그 큰 성공은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신 결과였다. 우리는 진급하고, 비즈니스가 잘되고, 가정이 평안한 것이 진정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셨기 때문임을 얼마나 인정하고 있는가?

우리는 가끔 기억날 때, 주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라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속으로는 나는 최고야, 정말 나는 실력이 있어! 나의 타고난 리더십 때문이야 라는 교만의식이 내 마음 저 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지는 않았는가? 다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우리는 솔직한 심정으로 나 자신을 드려다 볼 때 나도 모르는 교만의식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그 얼마나 많았던가 싶어진다. 소위 잘 나간다고 할 때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형통을 맛보게 하신 후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시기 원하신다. 우리는 이런 정황을 히스기야 왕의 사건을 통해 교훈 받게 된다. 사람은 특별한 상황을 만날 때 본심을 노출하게 된다. 하나님은 거대한 앗수르의 산혜립 왕이 큰 무리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교만한 말을 내 뱉자 하나님 앞에 엎드려 도움을 요청하는 히스기야 왕에게 기적을 베풀어주셨다. 그 후 겨우 39살의 한창 일할 나이에 죽음을 선고 받았다. 그 선고를 받고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 앞에 흐느껴 울면서 간구했다. 그 간구를 들으신 하나님은 병에서 고쳐주실 뿐 아니라 생명을 15년 동안 연장 시켜주신다는 특별한 약속을 하여주셨다. 이런 놀라운 소문이 이웃나라 바벨론에 알려지자 바벨론왕은 축하하기 위해 신하에게 친서와 함께 예물을 보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건인가!

하나님께서는 이런 상황을 만난 히스기야의 중심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하셨다. 그 때 히스기야왕은 “하나님께서 나를 죽을병에서 고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위대하신 분입니다!”라고 하나님만을 칭송하기를 기대하셨다. 그것은 은혜를 입은 자의 마땅한 반응이다. 그러나 그처럼 믿음 있는 히스기야 왕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창고의 보물과 무기고를 보여주며 자신의 힘을 자랑했다. 크게 실망하신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삶을 무미건조하게 끝나게 하셨다. 모세 역시 그랬다. 무리바 물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자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약속을 즉시 캔슬시켜 버리셨다. 그 수많은 헌신과 수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성도의 마음을 평가하시는 하나님의 테스트를 중요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 평가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 자는 그가 한 일에 상관없이 인생을 끝나게 하시고 또한 남은 삶을 건조하게 섭리하신다. 그런데 이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성도가 과연 얼마나 될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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