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마키아벨리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역사상 마키아벨리(Niccolo Macchiavelli 1469-1527)가 쓴 작은 책 ‘군주론’처럼 찬반의 의견이 분분했던 것도 없다. 그는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한 자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피렌체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 거주하는 교우가 마키아벨리의 생가를 구경시켜주었다. 그는 피렌체에서 서쪽으로 14킬로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 가루초(Garucho)에서 태어났다. 집 주위로 포도밭이 그림처럼 펼쳐져있는 아름다운 농촌마을의 허름한 농가 이층집이었다. 특히 피렌체는 제정 로마시대부터 좋은 포도주가 생산되는 곳이었는데 그 전통이 지금껏 이어져 오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이곳 어딘가에 네로 황제의 포도밭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그의 글에서 밝히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스물아홉 살에 피렌체공화국 서기로 등원하여 마흔네 살까지 일했다. 공화정이 무너지자 추방당했던 메디치 가문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기직에서 해임되자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왔다. 다시 복직할 날을 소망하면서.... 그리고 이곳에서 군주론을 집필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은 그를 유명인이 되게 한 군주론은 메디치 가문이 다시 권력을 잡지 못했다면 빛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시간적 여유가 있자 과거의 철인들과 정치가들을 분석하며 군주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도모할 수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도시 국가로 갈가리 찢어져있었고 한없이 무력하기만 했다. 프랑스와 스페인은 안방 드나들듯 쳐들어와 이태리 도시들을 점령하여 다스렸다. 그는 위대한 조국 건설에 힘이 되고 싶었기에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군주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군주는 선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때로는 악인도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완전한 자치 국가를 이루기위해서는 강력한 국가가 필요했고, 폭군적인 전제군주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조국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결코 뒤돌아보지 않아야 하고 목적을 향해 때로는 무자비한 지도력이 요구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강인한 정신력과 강력한 군대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고 보았다. 그는 강력한 군주의 예로 한니발의 비인도적 잔인성을 들었다. 그러나 그를 물리친 로마의 명장 스콜피온은 부하들에게 지나친 온정주의를 베풀었기 때문에 부하병사들은 스페인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그는 원로원으로부터 로마군대를 부패케 한 장본인이라는 이유로 명예롭지 못한 탄핵을 받아야했음을 비교하여 논하고 있다.

군주는 사랑 받기보다는 두려움을 받는 것이 유리한 이유로, 사람은 은혜를 입을 때는 목숨이나 재산 등 모든 것을 바치지만 위험이 닥치게 되면 금방 등을 돌리게 된다. 더 나아가서 사람은 두려워하는 자보다 애정을 느끼는 자를 훨씬 쉽게 배반한다고 보았다. 우리도 70년대 지도자가 경부고속도로를 만들 때 반대가 극심했고, 야당지도자는 포클레인 앞에 드러눕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수많은 반대 앞에 절대적 지도력을 가지고 밀어붙였고 그것은 국가 경제발전의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었다.

그가 말한 군주는 국가의 재정을 비축하여 국력을 튼튼하게 만들고 강력한 군대를 예비하고 강한 국가라는 목표를 가지고 나라를 평안하게 도모해야 한다는 말은 오늘날에도 적용된다. 그런 의미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오늘날 정치나, 교회 지도자들도 깊이 음미해볼 사상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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