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셋 집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우리는 지금 최고로 발전된 세상을 살아가는데 왜 집 없는 사람들은 그리 많을까? 오히려 원시 시대에는 누구나 차별 없이 자신의 움막을 소유하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나는 뉴욕 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할 때 창밖으로 바라보이는 숲을 이루고 있는 고층 아파트들을 바라보면서 뉴욕에 홈리스가 많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기야 나 역시 서울에 살 때 삭월 셋방을 찾아 정처 없이 떠돌아다녀야 했었다. 얼마나 이사를 많이 다녀야 했던지 셀 수 없을 정도로. 셋방살이는 언제나 한 숨과 설음이 동행하는 삶이다. 왜 그리 월세를 지불해야하는 날은 빨리 오는 건지....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천 년 전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입성한 바울도 이태동안 셋집에서 지냈다는 점이다. 재판을 빙거로 선교를 위해 로마에 왔기에 의미는 다르겠지만. 나도 셋집에 살고 있으니 바울이 로마의 셋집에서 살았다는 기록에 동질성을 느낀다. 바울이 로마에서 셋집에 살았다는 구절을 읽으며 그 셋집에 대한 관심을 가지곤 했다. 하도 오래된 일이니 그 장소를 알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러던 차에 아주 H집사에 의해 그 셋집을 찾았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당장 그와 함께 그곳을 방문하기로 했다. 당도한 그곳은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 근처였다. 로마시대에 트라스테베레(Trastevere) 강 주변은 유대인들이 촌락을 이루며 살았던 게토(Ghetto)였다고 한다. 물론 게토라는 이태리어가 본격적으로 쓰인 것은 1516년 베니스로부터였다고 하지만 바울이 로마를 방문할 때도 이미 유대인들은 집단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그 당시에 테베레 강이 바로 옆으로 흐르고 있었기에 이곳엔 많은 곡물 창고들과 천막 공장들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천막들은 배에 공급되었다고 한다.

바울은 천막제조의 기술자였고 또한 셋돈을 지불해야 되었기에 아르바이트하기에 안성맞춤인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고 설명한다. 공장에 딸린 방 한 칸을 월세로 얻어서 말이다. 그의 곁에는 항상 그를 지키는 로마의 군병이 있었고.... 이곳은 강가였기에 항상 습도로 인해 눅진하여 견디기에 고통스러웠을 터! 지금도 그 주변으로 유대인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다. 식당, 바, 여러 종류의 상점들..... 아마도 이들은 이천년 전부터 군락을 이루며 이곳에 살아왔지 싶다.

그곳에 차를 주차하고 바울의 셋집을 구체적으로 찾아 나섰다. 그 셋집은 산 파올로 알라 레골라(San Paolo alla Regola)라는 명칭이었다.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잘 모르는 눈치였다. 그런 중에 이곳을 청소하는 분을 만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었다. 그곳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아파트 사이로 갇혀있는 작은 성당이었다. 육중하게 닫혀있는 문에 달려있는 초인종을 오랫동안 누르니 젊은 수사가 나왔다. 이곳을 보려고 왔다고 하자 담당자가 없으니 오후에 다시 방문해 달라고 한다. 낙심한 표정으로 돌아서는데 닫혔던 문이 다시 열리더니 잠깐 들어오라고 한다. 아마도 드물게 방문한 동양인을 그냥 보내기가 안쓰러웠나보다.

셋집으로 사용하던 곳은 성당 앞 우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다 허물어졌는데 고고학자들이 고증을 토대로 찾아냈다고 한다. 지하에서 4층 정도의 건물 유적을 발견하기도 했고. 구체적인 지하의 모습은 문이 잠겨있어 볼 수가 없었다. 수사의 안내를 받아 들어가 보니 열 평정도 되는 방이었다. 바울은 이곳에서 연금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고 복음을 전했고 성경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옥중서신인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빌레몬서를 여기서 썼다고 하니 감개무량하기만 하다. 이곳에서 바울은 연금생활 중에도 쉬지 않고 복음을 전했고 그 열정은 자신을 지키는 군인들에게나 또한 자신을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쉬지 않고 전함으로 기회를 선용했다. 더구나 이년동안 수많은 제자들이 드나들었다고 생각하니 주변에 있는 돌 하나 나무 한그루까지 사랑스럽고 다정하게 여겨진다.

바울이 걸었던 바로 그 땅을 나도 밟게 된다는 사실이 고맙고 감격스러웠다. 바울은 이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도 바울이 지녔던 복음의 열정, 그리고 품었던 고민에 동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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