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아킬레스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교우가 어느 날 다리를 절룩이며 나타났다.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아들 녀석과 농구경기를 하던 중 리바운드를 잡으려고 함께 뛰어올랐다가 발뒤꿈치를 채였는데 그 때 약간 다쳤다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면 한 번 병원에 가보라고 하니, 별것 아니라고 하면서 발뒤꿈치를 매만진다. 그런데 며칠 지나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병원에 갔다고 한다. 진찰결과는 아킬레스가 거의 끊어졌다는 소견과 함께 조금만 늦게 왔으면 영영 다리를 절게 됐을 거라는 놀라운 말이었다고 한다. 아킬레스, 왜 발뒤꿈치를 아킬레스라고 할까?

그것은 오랜 역사적 신화가 있다. 아버지 크로노스를 추방하고 신들의 왕이 된 제우스는 그 역시 아들들에게 지배권을 빼앗기게 된다는 신탁을 받는다. 바다의 님프 테티스를 인간인 팔레우스와 결혼을 하게 한다. 그 결혼식 초청에 불화의 여신 에리스를 제외시켰다. 에리스는 화가 나서 하객들이 있는 자리에 황금사과를 던졌는데,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문구가 씌어 있었다. 세 여신인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는 그 사과가 자기 것이라고 서로 주장했다. 제우스는 이런 미묘한 판결을 내리고 싶지 않아 제우스의 양떼를 돌보던 파리스에게 판결권을 넘겨버렸다. 요즈음 대통령들이 사형언도 받은 자들의 집행결재를 미루는 것처럼.

그러자 세 여신들은 파리스에게 찾아가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려달라고 유혹했다. 저들은 경쟁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려주면 후히 보상하겠다고 약속했는데, 헤라는 권력과 부를, 아테나는 전쟁에서 영광과 명예를,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얻게 해주겠다는 어느 것 하나 뿌리칠 수 없는 달콤한 약속들이었다. 파리스는 결국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주게 됐고, 그녀의 보호아래 배를 타고 그리스로 건너갔다. 그는 그곳에서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큰 환대를 받았다. 당시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는 절세미인으로 신혼의 단꿈을 꾸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그녀를 설득해 트로이로 데려왔다. 사실 파리스는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이었는데 파리스가 장차 국가의 큰 화근이 된다는 불길한 예언 때문에 남몰래 타지로 보내 양육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사랑하는 아내, 그것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아내를 빼앗긴 일 때문에 저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됐다. 아내를 찾기 위해 메넬라오스는 그리스의 족장들을 설득해 전쟁에 참여케 했다. 이들 중에 오디세우스도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참전을 거부하는 다른 족장 중, 특히 최고의 명장 아킬레우스를 참전시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막강한 트로이를 상대하기가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테티스는 아들을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저승의 강 스틱스에 담갔는데 그의 발뒤꿈치를 잡고 거꾸로 담갔기에 그 부분만은 물에 젖지 않았다. 그래서 강인한 몸이 되었지만 유일하게 발뒤꿈치만은 그렇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약점이었다. 신의 위치에 있던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는 아들이 트로이 전쟁에서 죽을 운명이라는 신탁을 알고 참전을 막으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병사가 쏜 화살을 치명적인 부분이었던 발뒤꿈치에 맞고 죽었다.

우리에게도 아킬레스가 있다. 어떤 이는 돈, 어떤 이는 여자, 어떤 이는 명예, 그렇다면 나에게 아킬레스는 어디인가? 신화는 상상력의 산물만이 아니고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했을 뿐이다. 고로 현대인들도 교훈 받아야 할 부분이 있다.

단테는 그의 신곡에서 최고의 영웅 아킬레스가 지옥의 제 2옥에 있다고 쓰고 있다. 또한 전쟁의 원인으로 작용케 했던 절세의 미녀 헬레네, 또 클레오파트라 등등도 같은 곳에 있다고 묘사하고 있으니 아름다운 것이 그녀들의 아킬레스였지 싶다.

바울은 트로이의 역사적 장소를 전도의 전초기지로 설정했다. 딤후4;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에게 있는 아킬레스를 어떻게 관리할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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