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보배로운교회)
인류 역사 이래로 최고의 천하장사로 불릴만한 인물이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삼손'이었습니다. 그 힘이 얼마나 강하였으면 손에 아무것도 없이 사자를 마치 염소 새끼를 찢음같이 찢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삿 14:5). 당시 이스라엘과 대적 관계에 있던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뛰어난 힘을 두려워하면서 삼손을 제거할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들릴라’라는 여인을 이용해서 삼손이 가진 힘의 근원을 알아내려고 하였습니다. 들릴라를 통해 알아낸 삼손의 힘의 근원은 그의 머리카락에 있었습니다. 들릴라는 삼손이 잠든 사이 그의 머리카락을 잘라 버렸습니다. 머리카락이 잘린 삼손은 마치 이빨 빠진 호랑이와 같았습니다.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눈이 뽑히고 조롱과 경멸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삼손의 힘의 근원이 머리카락에 있었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시편 111편 10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거기서 근본이라는 용어는 머리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히브리어로 '레쉬트(רֵאשִׁית)'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근본과 머리와 으뜸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어로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이요 헬라어로는 '큐리오스'로 번역되었고 영어로는 'Lord'로 번역되었고 한글로는 '주'로 번역되었습니다. 골로새서 2장 6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선언한 것입니다. 즉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경외'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그분이 무엇을 행하셨는가에 대한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두려움과 공포적 차원에서의 경외가 아니라 신앙 고백적인 차원에서 존중과 경배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즉 경외한다는 것은 인격적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결과입니다. 정리해보면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이 곧 그리스도인들의 힘의 원천이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오늘 하루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을 소홀히 한다면 우리를 지탱해주는 가장 큰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되고 맙니다. 삼손의 힘의 근원이 되었던 머리카락이 잘려 나갔을 때 수치와 부끄러움과 치명적인 데미지를 받았듯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을 소홀히 하면 매일 낭패를 당하여 기진맥진해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환경을 이길 힘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직시해 보십시오. 지식이 그 힘을 대체할 수 없고, 경험한 노하우가 그 힘을 대체할 수 없고, 물질이 그 힘을 대체할 수가 없고, 특출한 은사가 그 힘을 대체할 수가 없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힘 빠지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힘이 빠지면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 떨어지면서 자신을 비하합니다. 자기 비하는 곧 우울한 감정으로 발전되어 나갑니다. 자기 비하와 우울한 감정에 젖어드는 배후를 추적해 가면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의 시간이 소홀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비하와 우울한 감정으로 인하여 힘이 빠지는 자신을 발견할 때 빨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십시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주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함으로 그분과의 인격적 만남의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자신을 존중하게 하고 자신을 사랑하게 하는 하늘의 힘이 주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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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