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거
멀리 태평양을 건너온 지 20년이 되어도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관심은 식을 줄 모른다. 더군다나 북한선교를 마지막 땅끝 선교의 꼭지점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최근 한국에서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민족과 국가의 장래에 너무나 중요했던 일인 만큼 오랜 시간을 드려 기도했었다. 결과는 보수진영의 참패로 드러났다. 세상 천하만사 모든 것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으니, 되어진 결과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지만 아쉬운 마음이 크다. 한국에서는 밤잠 이루지 못하는 화병환자까지 생겼다고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어도 조국을 향한 기도는 더 간절해짐을 느낀다.
여당과 야당, 좌우의 대립이 폭력으로 나타나기까지 하는 한국정치에서 어느 한쪽에 편든다는 것은 별로 현명한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혹자는 간단하게 몇 글자로 정리한다. ‘그놈이 그놈이다. 별놈 없다. 누가 되든지’로 금번 선거를 나름 깔끔하게 정리한다. 특별히 목회자로서 언급자체가 유익함이 없다며 손사래를 치면서, ‘투표권도 없는 사람이 무슨 남의 나라(?) 일에 신경을 쓰느냐’고 핀잔하는 이도 있었다. 또 모든 일을 달관하듯 하는 사람도 보았다. 어떤 이는 설마 ‘이완용처럼 나라를 팔아먹기까지 하겠느냐? 괜찮다.’ 그렇게 단정하며 위로한다.
선택과 기준
교회 안에도 다양한 관점의 성도들이 존재하기에 정치적 견해를 말하는 것 자체에 부담이 있다. 그래서 목사는 그저 무색무취하며 지나는 것이 좋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성경의 다니엘이나 느헤미야를 보면 믿음의 사람이 자신의 조국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그 나라가 잘 되는 길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며 말하는 것도 중요함을 가르쳐 준다. 그래서 굳이 주변의 말림이 있음에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질문에 대해 그 기준을 선명하게 설명도 하였다.
그렇게 굳이 숨기지 않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첫째는 하나님 나라와 복음, 구체적으로는 교회에 유익한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내가 살아가는 미국과 멀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세 번째는 장래 통일시대를 염두에 둘 때에, 어느 입장에서 전개하는 것이 북한에 교회와 신앙의 회복을 가져오는데 유익한가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이러한 선택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작금의 여당 정부를 향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생각과 기대는 너무 크게 무너져 버렸다. 엄청난 차이로 여당 정부의 승리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작년부터 이어진 막무가내식 선거법 협상의 밀어붙이기 효과가 그대로 드러난 결과였다. 위태위태 불안불안하던 것이 현실화된 것이다. 그 중에서 한 가지를 생각해보자. 전교조에 의해 사상적으로 많이 열려있던 고교생들에게까지 투표권이 주어진 내용이 문제였다. 정치현실에 대한 분별력을 갖추기 전에, 준비 없이 주어진 투표권이 사회적 현실 앞에서 제대로 행사된다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크지 않은 표차이로 양분된 금번 선거에서 야당이 대패하는 현실은 불을 보듯 뻔 한 일이었던 것이다.
되어진 일은 하나님의 뜻
그 외에도 불공정해 보이는 선거법으로 치러진 금번 선거에 대해 많은 이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다시 신앙의 관점으로 돌아와 본다. 결국, 상호 비판하는 것도 나라와 민족이 잘 되도록 하기 위함이지, 서로 헐뜯어서 함께 망하는 쪽으로 가서는 곤란한 데서 모든 생각들을 시작하게 된다. 되어진 일들 앞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 겸손히 더욱 무릎을 꿇는 데서 시작해야 할 이유가 된다.
좌우, 진보와 보수의 입장을 떠나 상호견제를 이룰만한 야당의 온전한 회복을 기도한다. 여야의 협력도 힘없는 야당이 되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답답한 야당을 생각하면서, 저들이 회복되어야 견제와 균형 속에 나라와 민족이 살고 번영하는 통일조국을 기대할 수 있기에, 애써 몇 가지를 적어서 평소 교류가 있던 야당 정치인에게 몇 가지를 적어 보냈다.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은데, 그리스도인의 현실인식에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적어본다.
밭을 탓하지 마시라
금번 선거패인의 가장 핵심은 야당의 시대를 읽는 ‘공감능력’의 부재라는 데 이견이 없다. 부산의 어느 야당 당선인의 의견을 적어본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도 못한 채 고교시절을 방직공장에서 보내고 뒤늦게 야간대학과 사법고시를 패스한 한 여성 당선자 의원의 말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음을 알아야 한다. 그의 말을 인용하며 보수의 자성할 교훈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공감 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국민은 함께 울어주고, 넘어지면 손잡아서 일으켜 주는 정치를 원하는데, 우리 당의 모습은 폼잡고, 의전 좋아하는 것으로 비쳤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경험한 예를 들며 비판을 이어갔다. “산불이 났기에 직접 올라가서 잔불 정리를 했다. 급식봉사 가서 식판 나르고, 설거지했다. 그런데 일부는 '별나게 하지 마라'고 하더라. 쓰레기 주우러 가면 열심히 쓰레기 줍는 거 말고, 사람들 쳐다보고 인사하고 하라고 했다. 봉사하러 가서 실제로 열심히 하는 게 별난 거였다.”
공감능력이 무엇인가? 굉장히 단순하다. 성경에 있는 대로,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웃는 자들과 함께 웃는 것’이다. 간단하다. 그런데 현재의 야당은 아직도 국민들을 정치인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내면의 의도를 판단치 못하는 무지랭이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들이 많이 쓰는 표현으로 ‘국민을 우습게 아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야당의원들은 자기들의 진심은 알아주지 않고, 현란한 여당의 말 속임수에 넘어갔다고 생각한다. 결국 답이 없는 전쟁이 치러진 것이다. ‘좋은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야당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노 전 대통령이 늘 하던 말이다. 그래서 폐족이라고 스스로를 일컫던 저들이, 국민들과 공감의 생존력을 회복하고 일어섰던 것이라 여겨진다.
평화로울 때 전쟁을 준비하시라
선거는 전쟁이다. 전쟁이 끝났으면 곧장 다음 전쟁을 위해 준비를 해야 한다. 준비하지 못하면 결국 매번 후회와 탄식밖에는 돌아올 것이 없다. 임진왜란 후, 류성룡이 쓴 징비록에는 왜란의 가장 큰 원인을 ‘평화가 너무 길었다’는 데서 찾는다. 무슨 말인가? 평화로울 때, 전쟁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평화의 때에 전쟁을 준비하는 이들만이 전쟁의 위기를 넘어서 항구적인 평화를 구가하고 누릴 자격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아랍의 틈바구니 속에서 생존하는 비결이 이것이다. 전 국민의 모든 일상의 시간들 속에 함께하는,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군사적 긴장감들이 평화의 비용으로 지불되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이 전쟁 같은 선거에 패하였다. 그러자 곧장 여당에서 행해지는 일들을 보라. 자신들의 부끄러움들은 철저히 가면속 기만으로 숨겨버리고, 자신들의 자랑거리만을 드러내는 홍보력으로 일들을 속전속결하고자 한다. 대통령 중임의 개헌과 입맛에 맞는 검찰 길들이기와 자신들의 지난 잘못에 대한 과한 면죄부 만들기, 북한과의 관계에 대한 무제한 속도전 등을 내세운다. 앞으로, 저들 속에 잠복되어 묻어갈 수 있는 반 기독교적인 정책들, 인권조례, 동성애 합법화, 토지공개념 토지 국유화, 고려연방제, 사회주의 경제체제, 자본주의 몰락, 사유재산권 제한과 박탈, 후에는 개량된 자유민주주의로의 전환 등 무시무시한 수순을 밟을 것으로 짐작된다.
여기에 대한 야당의 책임을 생각해보라.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다시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전쟁의 승패는 어떤 면에서 예견되어왔었지 않은가? 폐족이라고 스스로를 치부했던 저들의 모습 속에서 야당은 반드시 배워야 한다. 아직도 스스로를 예전에 잘 나가던, 나라는 엉망이 되어도 개별적으로 살만하다는 모습으로 자신들의 생각만 주장해서는 곤란하다. 스스로를 이미 망했지만, 더 철저하게 폐망한 가문처럼 여기고, 새로운 날들을 도모하며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깨질 때는 확실하게 깨져야 제대로 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자녀교육을 통해 늘 확인하는 말이 아닌가? 밭을 탓하지 말고, 그 밭의 특성과 상황에 맞게 돌도 골라내고, 가시덤불도 치워주고, 잡초도 뽑아주면, 밭은 좋은 열매로 농부의 수고에 답하여 주리라 믿는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책임
개인적이고 사적인 편지의 내용, 오픈되면 조금 오해가 될 법한 편향적으로 보이는 글을 쓴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이든 일방적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같이 기도제목을 나누기 위함이다. 좌와 우, 야당과 여당, 균형과 견제를 가지고 가지 못하는 조국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코 밝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가 살아가는 미국과 멀어지고, 잘못된 방향으로 통일이 진척되고, 반성경적인 정책들이 난무하는 그런 조국이 된다면, 이곳 미국에서 우리가 아무리 평안한 삶을 이어간다한들 그것이 어떻게 복이 되겠는가? 이렇게 야당이 무능하고, 그 무능함이 다시금 지역갈등구도로 모든 것을 회귀시켜간다면 조국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참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조국을 위해 기도하여야 한다. 조국 대한민국을 친히 불쌍히 여겨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마침 한국의 선배 목사님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교회에서 선거결과가 나오던 밤과 새벽부터 시작해서, 기도시간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북한동포들과 우방 미국을 위해 기도하는 이들이 많아졌고, 더불어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여당과 위정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권력을 행사하도록 그렇게도 많이 기도한다는 소식이었다. 또한 이러한 기도들이 공적 대표기도시간들을 통해 공감하는 내용으로 전달이 된다는 소식이었다. 감사하다. 그렇다. 선거의 결과는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이다. 화병을 일으킬 일이 아니다. 안타까운 만큼 더욱 기도할 시간을 찾는 것이 성도의 참 모습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더욱 새롭게 반드시 회복시켜 주시리라 믿는다.
davidnjeon@yahoo.com
05.02.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