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상실이 강제되는 시대

-현장예배, 가상과 실상, 영적면역력
전남수 목사

예배상실

 

은퇴를 3년 정도 남겨두신 선배 목사님께서 최근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몇주 동안의 회한이 가득담긴 편지를 한국에서 보내주셨다. 이곳 미국에서도 교회에서 모이는 예배에 대한 부담감이 안팎으로 커지는 때여서인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읽어보게 되었다.

-예배를 전폐하니 몸은 편한데 영혼의 갈급함은 말로 다할 수가 없네. 바벨론 강가에서 수금을 나무에 걸어 놓고 예루살렘 시온산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예배하던 때를 그리워하며 한 없이 울었던,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을 간절히 생각하며 가슴에 품어본다네.

주일이면 교회 와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마음껏 찬송하며 감사로 예배하던 그 날들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던가! 성도들과 마주보고 즐겁게 웃으며 정을 나누던 그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던가! 그럼에도 주일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일에 좀 더 정성껏 헌신하지 못한 아쉬움이 더욱 마음을 짓누른다네.

모두가 대구를 혐오하지만, 그래서 대구를 떠나고 싶어 하지만, 이 종은 오히려 대구의 시민이라는 자긍심이 더 깊어지는 것 같다네. 저 악하고 더러운 전염병이 사라지고 우리 그리운 일상으로 돌아가면, 이전 보다 더욱 대구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또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감사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 끝이 없다네. 2020.3.20 춘분, 봄이 오는 길목에서.

 

교회와 예배, 궤변

 

편지 글처럼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예배를 마음껏 드리지 못하는 마음이다. 어떤 분은 ‘인터넷 예배’가 있지 않느냐? 라고 대안임을 제시한다. 또한 분당의 어느 목사는 건물이 교회가 아니므로, 꼭 교회로 모이지 않아도 우리가 있는 그곳이 교회라며 인터넷 예배를 수용할 수 있음을 말한다. 못된 궤변에 불과하다. 

현실 상황이 인터넷 영상으로 예배해야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아주 특수한 상황이 되었다는 것과, 이러한 정황을 합리화하기 위해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들을 결코 훼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성경에 염병의 문제가 터지면 어떻게 하라고 하였는가? 주의 성전에서 회개하며 기도할 것을 말씀한다. 염병의 문제 앞에서 자신의 죄악을 돌아보고 기도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말씀하시며, 그럴 때에 땅을 고쳐주시며 회복시켜 주시겠노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지금의 사태는 염병의 문제와 더불어 이를 치유할 기도의 자리까지 막혀버린 그런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기도하고 예배하러 모이면 이웃들에게 돌을 맞아야할 형편이 된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은 하늘 아버지 집에 모여 예배할 수도 없게 된 막막한 현실 앞에 통곡하며 울부짖어야 마땅한 형편이지, 오히려 굳이 교회로 모이지 않아도 충분히 예배가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엉터리논설을 말할 때는 아닌 것이다. 교회로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바래야 마땅할 것이지, 어떻게 교회 오지 않아도 될 합당한 근거로 교회를 건축물 정도에 비유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만큼 한국교회는 그 지도층에서부터 썩어빠진 생각으로 위기 앞에 타락의 전조를 드러내 보인다 할 것이다.

 

예배를 차단하는 괴질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느 곳에서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대공항을 예고한다. 한국에서는 IMF 때보다 더 심각할 것으로 추단한다. 왜 그런가? IMF를 한국이 극복하면서 신용평가 등급이 되고, 오히려 경제나 모든 면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단단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이면에는 IMF의 고통가운데서 한국교회의 새벽기도와 예배와 간증이 풍성했던 것을 이유로 판단한다. 이것도 어렵고 저것도 어렵고,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런 밤을 지나면서 힘써 주님의 전에 모여서 기도함으로 곳곳에서 은혜의 힘으로 난세를 이겨내었던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아주 악독한 것이다. 주의 전에 나아와 예배하며 찬송하는 모든 통로를 막아버리니 악한 형편들이 회복될 길이 더 요원해진 것이다. 기도와 예배가 펼쳐지는 교회부터 막아버리니 형편이 더욱 악해질 것은 불을 보듯 더 선명해진 것이다. 염려와 근심과 불안을 돌이킬 만한 기도의 귀한 부르짖음을 상실해가는 것이다. 어떻게 집 안방침대에서의 기도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인 교회에서 드리는 기도가 같을 수 있겠는가?

 

교회-영적치료소

 

최근 어떤 성도님이 삶의 어려움을 지나면서 자신의 결심을 말한다. ‘목사님, 어렵고 힘들지만 그러려니 하고 꾹 참고 지나가고자 합니다.’ 이 말을 듣고는 대답을 바꾸어 드렸다. ’집사님, 꾹 참고 지나가지 마시고, 입을 열어서 더욱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사람 접촉이 힘들어 교회를 오지 못하는데, 사업장에는 마스크를 쓰고라도 출근을 하지 않습니까? 아이가 배가 고파하면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마켓에 가셔서 개의치 않고 물건도 사지 않습니까? 사람이 없는 시간에 교회에 와서, 빈방에 가서나 교회 기둥을 붙잡고라도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는 만민의 기도하는 집입니다. 무엇이든 이곳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고 이곳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인다 하였는데, 교회로 와서 더 많이 더 빡세게 부르짖고 기도하세요.’ 

듣고 아니 듣고는 본인의 선택이지만 분명한 것은 금번의 일로 신앙이 좋아지는 분들이 있는 반면에 영적으로 유해한 바이러스로 인해 그 형편이 더욱 악하여지는 경우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한마디로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의 영적 면역력부터 먼저 공격하면서, 영적 치료보호소인 교회부터 차단시키는 것을 보면 공격의 강도가 엄청난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늘 문을 열고 부어주시는, 주의 은혜의 빛을 보아야 할 것이다.

 

인터넷 예배

 

코로나바이러스는 영적치료소인 교회를 폐쇄하게 할 뿐 아니라 이 염병이 지나간 후에도 여러 가지 문제를 낳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영상예배에 익숙해진 나머지 굳이 교회 가서 예배드릴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금번 질병으로 인해 교회마다 성전을 폐쇄하고 유튜브 등의 방송시설을 꾸며 인터넷 예배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결코 온전한 예배의 도구가 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함에도 영상예배에 익숙해지고 나면 정한시간에 정한 장소에서 드려지는 복된 예배자의 삶을 놓치게 되는것은 아닐까? 염려하게 된다. 

마치 과거 한국에서 예전에 인신매매가 횡행할 때 저녁예배를 오후예배로 돌리고, 문제가 지나간 후에도 편한 방법을 찾아 저녁이 아닌 오후에 회집을 하였고, 후에는 더 편하도록 오후예배를 오전부터 몇 부 예배로 나뉘어 골라서 형편 따라 한번만 예배드리면 주일성수를 한 것처럼 만들어버린 것이다. 한국교회가 영적으로 아주 취약하게 된 주요원인이다.  

영상예배에 익숙하다보면 엔터테인먼트 기술에 의해 영적감각이 둔화될 수 있다. 드라마를 찍을 때 한 장면에서 보통 여덟 컷을 찍는다고 한다. 이에 비해 영화는 장면 당 24개의 컷이 들어가게 되는데, 그래서 드라마와 비교할 수 없는 재미를 영화가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유명한 대작을 찍을 때는 1분짜리를 찍는데 거의 한달 이상이 소요된다. 

프로야구 경기를 보러 가면 TV영상으로 볼 때보다 훨씬 못한 것을 경험한다. 그냥 분위기에 취할 따름이지, 선수가 공을 잡았는지 떨어뜨렸는지 그저 주변의 반응과 더불어 볼 따름이다. 이에 비해 TV 중계는 훨씬 더 재미있다. 천천히 돌리기도 하고, 다시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TV프로야구가, 현실게임보다 더 재미있는 이유이다. 거기에 광고 선전까지 등장하면 그야말로 유혹과 세뇌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쇼’와 강단

 

교회 강단에 실제 목사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 시대를 생각해보라. 그냥 동영상이 아니라 5G 데이터에 의한 동영상이 강단을 장식한다고 생각해보라. 5G는 교회 영상예배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것이다. 실제보다 훨씬 더 극적인 화면의 보여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향력 있는 교회들은 지교회를 세우고, 영상을 송출하여 때로는 시각적 효과를 극대한 시킨 무대에서, 예수님처럼 벽을 통과해서 목사가 나타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한마디로 ‘쇼’하는 강단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실제로 지역마다 브랜치로 교회를 두는 유명한 미국 대형교회에서는 매 예배시간이 한편의 드라마처럼 만들어진다. 멋진 배우의 등장처럼 목사를 등장시키고, 셋트장을 꾸미듯 강단을 꾸며 매주 감동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예배가 마쳐지면 절로 아이패드를 꺼내어 그날 ‘쇼’의 값을 매기듯 헌금을 결정하여 온라인으로 송금하게 된다. 

   

실상과 가상

 

이렇게 된다면 과연 영향력 있는 교회는 어떤 모습이 될까? 그것은 말씀과 성령의 역사에 앞서서, 좋은 기술 PD를 영입한 교회가 부흥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나지 않겠는가? 어느 교회가 더 좋은 장비와 시설을 가지고 더 사람들을 이끌만한 시스템을 구축하는가 하는 것이 부흥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될 것이다. 결국 이것은 실상이 아니고, 가상일 따름인데, 가상의 세계를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은 정말 참람한 일이다. 

이와 같은 타락이 일반화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시대는 이를 수용하는 쪽으로 흘러갈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때에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문제는 작은 입맛을 느끼게 하는 기회가 되기에 충분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연세 드신 어르신부터 모두가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일상생활과 정보를 얻고, 이제는 예배까지 이를 통해서 드린다고 하면 이 흐름의 대세를 누가 막을 것인가? 더불어 이젠 연세 지긋한 목회자들조차도 예배를 위해 카메라 앞에 앉아 유튜버 방송인이 되어가는 것을 본다.  

 

영적면역력

 

건강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전혀 질병과 상관없이 사는 삶을 말하지 않는다. 하루에도 수백 개의 암세포가 생성되지만 이를 이길 만한 면역세포가 싸워 물리쳐주기에 인간은 건강함을 지키며 사는 것이다. 영적인 부분도 마찬가지다. 쉼 없이 반복되는 영적공격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우리의 마음을 두려워하고 근심하며 염려하게 만든다. 영적세포들을 파괴시킨 후에 우리의 생명과 삶을 공격할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염병이며 괴질이다. 몸속에 바이러스 감염질환을 유발하기에 앞서, 성도를 교회에 모이지 못하게 하고, 예배드리지 못하게 만드는 악한 사단의 도구이다. 성도로 하여금 교회로 가지 못하고, 예배드리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은 악하고 독한 것이다. 이를 이기는 길은 질병치유의 유무에 앞서서, 먼저 영적으로 마음과 생각을 단단히 하는 것이다. 두려움과 염려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다. 

너무 많은 인터넷 정보와 뉴스로 무장해제 되지 말아야 한다. 영혼의 생명을 위해 대신 싸워줄 면역세포를 백기투항하게 만드는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결코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에 가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것이다. 

davidnjeon@yahoo.com

04.0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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