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교육 사명훈련

- 한글, 신앙, 선교
전남수 목사

조만간 대부분의 한글학교가 봄 학기를 맞아 개강을 하게 된다. 영사관의 재정적 지원들과 지역별 연합운동의 활발함들이 개별 한글학교에 좋은 동기와 열심들을 제공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본 교회에서 운영하는 한글학교에도 강권하며 자녀들을 등록하게 한다. 

본 교회는 출석하는 모든 부모들에게 필수적으로 세 가지를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을 강조한다. 평생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악기를 하나씩 배우도록 하라. 태권도를 배워라. 자기 보호와 함께 싸움기술을 가르치는 다른 운동들과 달리 기본정신을 한국인의 정서가운데 배우기 때문이다. 태권도는 자세와 태도의 기본기를 훈련하는데 최고이다. 세 번째는 반드시 한글학교를 다니게 하여 한글을 언어과정으로 접근하여 배우게 하라고 강조한다. 그 가운데 제일 중요하게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이 바로 한글 교육이다.

 

한글교육은 사명훈련

한글학교가 오픈되는 토요일 아침이면 가정마다 작은 전쟁이 일어난다. 아이들이 학교로부터 벗어나 유일하게 하루를 쉬고 싶어 하는 시간임에도, 부모들이 사명의 한 부분으로 알고 한글학교 가는 것을 강제하도록 한다. 그런데 매번 등록된 아이들을 보면, 한글을 모르는 아이들보다는 오히려 한글을 잘 사용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역설적으로, 그런 열의를 가진 부모님들과 아이들의 순종은 합력해서 아주 좋은 열매를 보게 된다. 의사소통과 신앙교육, 삶의 자세에 대한 것까지 그 열매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교육은 자녀가 원하는 좋은 것만 주는 방목이 아니다. 마땅히 좋은 것을 먼저 보고 먼저 경험한 부모와 선생의 노력으로 되는 유목이다. 짐승도 방목하면, 야생의 약육강식에 의해 생사를 장담하기 어렵다. 방목의 세계에서는 힘이 우선이기에 그러하다. 그러나 집에서 기른 유목한 짐승은 약해도 살아가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적절할 때 사람을 보고 짖을 줄도 알고 철이 들어가는 것이다. 흔히 부모들 가운데, 때가 되면 철들겠다고 하지만 그 철이 들기까지 부모의 심장은 시커멓게 될 수밖에 없다. 뒤돌아보면 마땅히 가르쳐야할 때 가르치지 못한 부모의 책임이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한글교육과 정체성

언어교육, 이민사회에서의 한글교육은 백번을 강조하여도 부족함이 없다. 언어는 그 사람의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문화와 역사와 사회적인 행위들 속에서 학습하게 됨으로, 언어를 포장하고 있는 전반적인 사회적 이해를 함께 받아들이게 된다. 예를 들어, 이슬람어를 연구하는 이들을 보면 그 문화에 대해서도 함께 호의적 반응을 한다. 이해하는 만큼 받아들이고 배우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글을 좋아하고 배우는 사람들이 한국문화에 대단히 호의적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한글교육은 우리 자녀들이 우리민족의 고유한 정체성을 깨닫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더불어 그 민족에게 허락된 고유한 사명까지 깨닫게 함으로 역동적인 삶을 추구하게 만들 것이다. 신앙생활에도 사명을 깨닫는 유무에 의해 그 열매가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본다. 더 나아가 언어는 그리스도인에게 사명의 정체성을 깨닫게 하는 특별한 통로가 될 것이다. 

한글을 통해 배우는 우리의 특별한 사명은 무엇인가? 한글교육은 단순한 부모와의 의사소통이라는 기본적인 목표에 머물지 않는다. 멀리 타국에서 조국 대한민국을 바라보게 하며, 그 소식이 들리게 하며, 생각하게 하고, 마침내 은혜가운데 우리에게 주신 사명도 깨닫게 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이민 사회에서의 한글 교육은 우리에게 주신 고유한 사명에 대한 정체성을 회복하는 너무나 소중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교회와 한글교육

한글학교는 영사관의 지원 하에 독립적인 교육기관을 통해 운영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민사회의 대부분의 한글학교는 교회에서 운영되는 예가 많다.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아주 귀한 일이다. 한글교육이 사명훈련이 되기 위해서는 토요일 한글학교 뿐 아니라, 저들의 신앙생활가운데 녹아져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 가정의 대부분의 아이들의 교제권이 교회이고, 교회를 중심해서 친구관계와 자신들의 관심에 따른 참여그룹들을 확장해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부모들의 한글교육의 목표는 가장 기본적으로, 부모와의 의사소통을 넘어서 자녀들의 신앙생활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한마디로, 한글교육은 신앙유산을 전수하는 가장 귀중한 첫 걸음이 된다. 그 신앙의 유산 속에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명을 발견하며, 헌신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거의 20년전 미국에서 처음 이민교회를 방문하였다. 대도시의 중형교회였는데, 첫인상을 설명하면 상당히 역동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1부에서 3부까지 예배가 나뉘어져 있어서, 어느 예배라도 들어가게 되면 되었다. 자녀들은 부모와 함께 예배에 와서, 자신들이 적응하기 쉬운 영어권 예배로 들어간 후에 예배 후에 부모와 만나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 한 번의 예배가 주일 드리는 예배의 전부였다. 

영어권 예배의 사역자는 약간의 한국말을 할 줄 알지만 미국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게 자란 2세들 중에는 귀한 은혜가운데 신앙생활을 잘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새벽기도와 우리가 가진 독특한 주일신앙의 한국적 DNA와는 상관없이 자유롭게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 현상 속에 자녀의 신앙교육에 힘들어하는 부모들을 보면서 받은 그 인상들이 이후 이민교회를 개척하면서 다른 방향으로 교회교육을 세워가게 되었다.

 

한글, 한국말 예배

교회를 개척하면서 자녀들에게 한글교육을 강조하게 되었는데, 한글학교에 출석의무는 당연한 것이고, 이것을 토요일 하루만 강조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교회예배에도 적용을 하게 되었다. EM예배가 세워지고 사역자가 있음에도, EM은 성인 영어권이 출석하는 교회, 부모님 중에 한분이 미국분이시면 선택할 수 있도록 제한을 하였다. 부모가 한국 사람이면 당연히 EM예배 출석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설교를 받아 적으면서 어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도록 하였다. 부모들 중에는 아이가 이해가 어려워서 영어권으로 보내달라고 하는 이도 있었고, 어떤 분들은 목사님의 고향 사투리가 힘들다는 투정도 하였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렇게 규정이 되다보니, 아이들의 이해하는 것이나 배우는 것에 좋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 

한국말 예배는 한국말로만 이해하고 듣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고유한 한국 사람으로서 반드시 품고 배워야 하는 또 다른 가르침이 들어있다. 단순히 이해하는 수준이 아니다. 예를 들면, 자세와 태도의 변화, 그리고 자신과 부모가 함께 말씀을 듣는 목회자에 대한 자세들까지 달라지더라는 것이다. 안 듣는 것 같아도, 못 들은 척해도, 하나님께서 들을 것은 다 듣게 하시더라는 것이다. 한국말 예배 속에는 한국인의 문화와 사상과 무엇보다 부모와 함께 드리는 예배가운데 하나님이 자손 대를 이어 주시는 특별한 은혜를 함께 공유하게 된다. 그 속에는 고유한 언어와 함께 주어지는 고유한 사명의 분량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의 은혜의 장막아래서 함께 그 복을 받는 것이다. 

엘리트 교육을 한다고, 전인교육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자세가 중요하다. 기본기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신앙의 기본이 되어졌을 때, 기술을 가르쳐도 늦지 않다.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고서, 신앙과 삶의 유산을 제대로 넉넉하게 전수할 길이 무엇일까? 혹자는 자녀를 글로벌하게 키우기 원해서, 한국적인 정서를 애써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다. 착각하며 잊고 있는 것이 있다. 가장 우리다운 것이, 가장 그 민족자체에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이 가장 글로벌하게 되는 것임을 모르는 것이다. 

 

북한선교의 책임 

본 한국학교의 교훈은 ‘개구리가 됩시다’이다. 물에서도 살고, 땅에서도 사는 개구리처럼 한국말도 하고 영어도 하는 그런 사람이 되면, 하나님이 얼마나 더 복되게 사용하시겠는가? 하는 데서 유래한다. 부모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은, 게다가 부모가 새벽기도 하는 한국적 신앙의 DNA를 가진 이라고 할 때, 얼마나 그것이 큰 축복인지 모른다. 마지막 종말시대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가장 귀한 영적 이스라엘의 조건이 무엇인가? 마지막 복음전도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이다. 오늘날 땅끝의 사명이 무엇인가? 여러 답을 말할 수 있을 것이지만, 최소한 우리 한국민족에게는 북한이 정답이다. 북한의 개방과 지하교회가 밖으로 드러나며, 북한이 복음화 되는 것에 쓰임 받는 것이 땅끝의 사명을 감당하고 주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니겠는가?   

태평양을 건너 초일류 강대국인 미국에 이민 오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흩으시며 복음을 전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거기서도 저들은 복음을 전하였다면, 미국 땅에서 살게 하신 하나님의 이유가 복음을 위한 것임을 생각할 때,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인 미국에서 우리자녀에게 그 사명을 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것이 가장 우리의 삶과 자녀의 삶을 하나님 앞에 뜨겁게 살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지금 이 시대의 마지막 선교지, 북한을 바라보면서 북한에서의 사역과 헌신을 생각한다면 우리 2세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고, 말속에 담겨있는 부모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 우리의 민족적인 차별성들을 생각한다면 우리말을 가르치는 것은 사명훈련이며 곧 선교훈련이 되는 것이다. 

 

통일한국, 우리자녀

통일 한국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2세들이 부모세대의 그 언어를 가지고서 활발한 소통을 이루게 될 때 북한에서의 효과적인 복음전파와 장래 민족공동체의 융성에 크게 기여하는 바가 될 줄로 믿는다. 언어를 배우지 못하고, 어떻게 북한선교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결국, 한글교육은 부모세대가 노래하던 통일한국을 향한 북한 복음화를 위한 필수적인 도구가 되는 것이다. 

어릴 때 김치를 많이 먹던 어른세대들은 아무리 비싼 스테이크를 앞에 두고서도 김치를 찾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랜 시간 반복해서 먹어왔기 때문이다. 좋은 것은 뼈 속 깊이 새기라는 말이 있듯이, 한글 교육에 몰입해야 한다. 결단하지 않으면 얼굴은 한국 사람인데 국적불명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어 스스로도 정체성의 방황을 겪을 것이 분명하다. 의지와 결단이 필요하다. 부모가 한국 사람인데, 한국말을 못하는 너희는 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냐? 그럴만한 부모님들의 영적결단을 통한 권세가 있어야 한다. 토요일 아침 사명감을 가지고 깨워야 한다. 

davidnjeon@yahoo.com

 

02.0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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