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예배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예배를 매개체로 수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한 주에 한 번씩 하는 특별 행사가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늘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마치, 숨 쉬는 것을 한 번에 몰아쉬지 않고 항상 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예배가 삶이 되어야 하고, 삶이 곧 예배가 되어야 한다.
신앙의 중심, 인생의 목적
예배란 공식 예배는 물론이고 하나님을 높이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고의 하나님께 최선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과 위대하심을 목소리 높여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찬양하는 것이며 그분의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다. 예배는 신앙생활의 중심이며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예배자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예배가 너무 많다는 비판을 한다. 주일 낮, 주일 오후, 수요 예배, 새벽 예배, 구역 예배, 금요 예배 등을 나열한다. 아직도 옛날방식으로 목회하나? 그러나 그런 비판의 시류와 상관없이 예배가 되었든 기도회가 되었든 교회의 공적인 예배나 기도회에 참여하기 위해 성도는 부지런히 모여야 한다. 예배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예배 횟수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교회와 가정, 직장이나 어디서든지 자주 예배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며, 이웃들과의 최고의 섬김과 교제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많은 인물들이 세상에서도 예배에 승리함으로 복을 받았다. 반면에 예배에 실패함으로 저주를 받은 흔적도 명백하다. 사무엘이 사사가 되었을 때, 나라의 영적회복을 위해 백성들을 모으고 미스바에서 하나님께 예배했다. 그때 숙적 블레셋이 침략해왔지만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해 주셔서 태평성대를 이루게 되었다. 이런 내용들은 성경에 부지기수이다.
예배의 실패로 인한 멸망도 정확하게 기록하신다. 레위기 10장에 나답과 아비후는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들이며 본인들도 제사장이었는데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즉사했다. 예배에 실패해서 멸망한 것이다. 가인과 사울왕도 예배에 실패해서 망한 사람들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인들에게서도 비슷한 모습이 있었다. 외식하는 저들을 향해, 마음이 빠져 버린 신앙과 예배가 하나님 앞에서 가증스러운 것임을 말씀하셨다. 예배의 실패가 삶의 실패로 나타난 것이다.
삶의 회복과 생활예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의 온전함에는 삶의 예배가 따라와야 한다. 로마서 12장에는 몸으로 드리는 예배를 말씀하신다. 여기서 ‘몸’이란 우리의 육체만이 아니라 인격과 삶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예배 외에 매일 매순간의 삶이 예배의 연장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활 예배로 드리기 위해 무엇보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야 한다. 그리고 그 뜻대로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목사는 설교한 대로 살고, 성도들은 설교를 들은 대로 살아야 한다. 누구든지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깨달은 대로 살아야 한다.
우리에게는각자 하나님으로부터 맡은 직분과 사명이 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그 외에 있는 곳곳에서 맡은 일이 있다. 교회 안에서 하는 일만 주의 일이 아니다. 죄를 짓는 것 빼고 세상에서 사는 동안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마르틴 루터는 “우유를 짜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소의 젖을 짤 수 있다”고 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신과 섬김이 예배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이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것이 예배이며 그리고 천국 갈 때까지, 더 나아가 천국에서도 영원히 할 것은 예배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예배의 중요성은 강조에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신앙생활을 처음 하는 그리스도인은 잘 몰라서 그렇고, 신앙의 연륜이 오래된 사람은 타성에 젖어서 예배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살아 있는 예배'란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를 말한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그분을 섬기는 것이다. 흔히 예배를 '은혜 받는 시간'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예배의 결과이지 동기나 목적은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예배이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릴 때 우리는 정성을 바쳐야 한다. 정성이 없으면 건성으로 드리는 예배 곧 형식적인 예배로 전락하게 된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는 요한복음 말씀처럼 영과 진리의 예배는 시간과 정성 마음을 다하여 드리는 것이 예배이다. 그래서 예배에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기도와 찬송, 말씀과 헌금도 최선을 다해서 드려야 한다.
세상에서도 한결같이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계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매순간마다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꼭 찬송하고 기도하지 않는 시간에도, 공부하고 일하고 있을 때라도 하나님 의 임재 앞에 있음을 의식해야 한다.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말한다. 에녹이 그렇게 살았다. 그는 대단한 업적을 남기지 않았지만 구약에서 엘리야와 더불어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에 그대로 들림 받은 사람이다. 우리 신앙이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동일해야 한다. 예배 시간의 모습이 삶 속에서도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자에게는 세상에서 분명한 승리의 간증들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맞선 대영제국은 승산 없는 전쟁을 하고 있었다. 수상 윈스턴 처칠은 윌리엄 템플 목사에게 대국민 연설을 부탁했다. “국민여러분, 전쟁이 큰일이지만 예배는 더 큰일입니다. 하나님만 바라고 예배할 때 우리가 예배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입니다.” 이튿날 영국 전역은 예배드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결국 대영제국은 불가능해 보였던 승리를 얻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에게 주시는 승리였다.
세상 모든 삶의 근원-예배
예배가 회복되어야 신앙생활과 인생이 회복된다. 더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예배와 삶은 나누어지지 않는다. 예배와 삶은 하나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배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삶 속의 예배가 살아 있는 진정한 예배자만이, 오직 한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기쁘시게 할 수 있다. 특별히 주일에는 모든 것을 멈추고 하나님을 예배해야한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므로 예배를 드려야 영이 살고 영이 살아야 육이 산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혁명의 주체세력들이 무신론자들이었다. 그들은 주일예배를 방해하고자 1주일을 10일로 바꾸었는데, 모든 산업생산량이 40% 감소하고 말았다. 러시아혁명 당시 레닌은 1주일을 8일로 바꾸었다. 그러자 생산량이 30% 감소했다. 당황한 나머지 반대로 1주일을 6일로 바꾸게 된다. 주일예배를 방해하고 노동자들에게 환심을 사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도 생산량이 30% 감소하자 다시 7일로 되돌려 놓고 말았다고 한다. 예배는 이렇게 놀라운 것이다. 모든 것의 근원이다.
예배는 우리의 전 인생을 살린다. 예배에 성공하고 있다면 승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고 예배에 실패하고 있다면 이미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 최고의 우선순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최고의 표현은 예배이다. 삶의 회복을 원하는가? 세상의 변혁을 원하는가? 삶의 승리자로 영원히 기억되고, 주님의 칭찬과 인정과 상급받는 삶을 원하는가? 예배의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거기서 시작하고 출발하는 것이다.
09.07.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