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무언가 남겨주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낳아서 키워주고 공부시키고 결혼시켰으면 부모로서의 웬만한 역할들은 다했을 것인데도 더 주고 싶어 난리다. 넉넉한 유산을 남기고 싶은 것이다. 부모들이 주고 싶은 게 뭘까?
물질유산. 문화적 유산
부모들은 무엇보다 자녀들에게 땅이나 돈과 같은 물질적 유산을 많이 물려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부모에게서 물질적 유산을 풍족히 받아 편안한 삶의 여건을 마련한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부모가 그럴만한 여건이 되지못하여 부족한 가운데 살다보니. 받은 게 없어서 피곤한 인생을 산다고 생각한다 전자를 가리켜 금수저로 태어났다고 말하고 후자를 가리켜 흙수저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말한다. 흑자는 아무것도 없는 무수저 인생이라고도 말한다. 유산은 이렇게 보여지는 유형의 것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문화적 유산이라는 것이 있다. 물질만 있어서 부자는 되었는데 교양과 상식을 갖추지 못하면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한다. 그들을 향해 돈만 아는 ‘졸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조롱하는 말이다. 그래서 특별히 부모들은 물질을 물려줄 뿐 아니라. 교육을 잘 시키고 교양을 갖춘 인물로 자식을 양육하려고 애를 쓴다. 사람들이 흔히 ‘네(사)가지가 없다’라는 말을 하는데 네 가지는 사실 신언서판(身言書判)을 의미하는 좋은 말이다. 사람이 몸이 균형을 갖추고 건강하다는 것과 말하는 것 글 쓰는 것 등의 분별력을 골고루 갖추고 있을 때 네 가지를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태도와 자세 교양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집에 가보면 애들이 온통 송아지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것을 본다. 손님이 찾아오거나 하면 정숙한 자세를 취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것이 바른 것인데. 아이가 어리지 않음에도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 공공장소에 갔을 때도 마치 내 집에 온 것 같이 마구 떠들며 행동한다. 자세와 태도가 훈련되지 않은 것이다. 어른 앞에서 정숙함을 지킬 수 있는 그런 것이 잘 훈련되어졌을 때 사람들은 그 집안에 가풍이 있고 가문에 뼈대가 있고 가정교육이 잘되었다고 말한다. 유산으로 표현하면, 문화적 유산을 그 부모로부터 잘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는 거시다.
믿음의 유산
그러나 물질유산과 정신적인 문화유산을 많이 받았다 하더라도, 나머지 한 가지가 없으면 실패요 낭패라고 할 수 있다. 믿음의 유산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업이요 복의 근원이 되시는데, 그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 안에서 복을 누려야 되는데 그 하나님을 빼놓은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음을 본다.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 인간적인 문화적 유산에 매여 전통과 가풍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인본주의적인 수준에 머물 뿐이다. 또한 물질을 지켜 그 대를 이어 부를 유지해 보려고 하지만, 결국 하나님 없는 인생의 결론은 허망할 뿐임을 보게 된다.
믿음의 유산 없는 물질유산의 허망함들은 성경 속에서 증명이 된다. 여호수아가 110세에 죽고 난 뒤, 다음 세대들을 보면 명확하게 구분된다. 여호수아 그 이후 세대들은 가나안 민족을 좇아내려고 피 흘리지 않아도 되고, 부모덕분에 남겨준 땅과 빌딩을 잘 관리하면, 먹고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는 세대였다. 어찌 보면 복 받은 금수저 같은 위기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들에 대해 성경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라고 말한다.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이 입에 금수저를 달고 나온 세대임에도,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는 것은 한마디로 결론이 허망할 것임을 예언하는 말이다. 물질적 유산은 풍성해도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진노가운데 머문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싫어할 짓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상황에 맞물린 신앙한계
오늘날 한국 미국 할 것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대학을 진학하면서 2/3가 교회를 떠나고, 거기서 또 사회로 나가며 2/3가 떠난다고 말한다. 한국을 방문했더니, 교회마다 대학 수능을 위한 기도회와 수험생 명단들이 게시판에 나열되어 있음을 보았다. 그 해의 수능이 끝나면 그 다음해에 수능을 치룰 자녀를 둔 부모들이 새벽기도회부터 기도의 응원팀을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그 자녀들은 영적 사각지대에 놓여있음을 본다. 그러나 부모의 욕심이 자녀들의 온전한 신앙생활을 추월해버렸기 때문이다.
한국의 어느 교회에 고3 수험생을 둔 권사님이 있었다. 아이가 고3이 되던 해에 교역자를 찾아가서 상담 후 간략하게 단언을 했다고 한다. 아들을 고3 1년 동안은 교회에 보내지 않을 것이며 아이에게는 미래를 위해 고3 한 해 동안만 교회에 빠지고 공부만 하라고 했다. 아이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간 후에 그 어머니 권사님은 이제 아들에게 다시 교회에 나가도록 권했는데 돌아온 아들의 답이 다음과 같았다. ‘어머니, 저도 알만큼 다 알아요’ 뭘 안다는 말인가? 어머니에게는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보다 세상의 일에 성공 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은 세상의 성공 앞에서라면 언제라도 내팽개칠수 있는 그런 신이기에, 그런 수준의 하나님을 구태여 자신이 믿고 따를 필요가 있겠느냐는 말이었다.
가정믿음, 교회충성, 세상회복
가정에서 믿음의 유산이 불분명하면 하나님이 부모를 통해 하신 아름다운 일들을 잊어버리게 된다. 교회를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며 살아온 일들이 자녀들에게 온전히 전달되어야 한다. 자녀들의 마음속에 예배와 교회, 신앙의 헌신과 충성이 새겨져야 한다. 그렇게 마음에 새겨진 신앙의 유산이 없으면 결국 교회로부터 몸과 마음이 떠나가고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세월을 가지게 된다. 결국 세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자녀들이 교회를 떠나도 교회에서 배운 게 있으니 착하게 살겠지 하는 그런 막연한 마음의 기대를 가진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 섬김을 떠나면, 인생은 돈을 섬기던지 자신의 야망을 섬기던지, 결국은 마음과 몸이 원하고, 눈이 원하는 것 즉 세상의 욕망을 따라 방탕하게 살아갈 따름이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십자가에 더 부정적인 모습으로 교회를 떠나면서, 교회를 비판하고 비방하며 저주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은 교회가 교리라는 것으로 자신들의 자유를 억압했다고 세상에서 배운 지식과 학문을 가지고 제단하기 시작한다. 인터넷에서 취합되는잡다한 정보를 가지고 자신의 존귀한 부모세대에 하나님이 부어준 그 복을 내팽개치듯이 교회를 비판한다. 혹자는 모태신앙이지만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목사, 장로, 권사라고 말한다. 또 왕년에 받은 상처들을 간증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 결과 하나님에게서는 멀어지고 세상 앞에 절을 하고 세상 바라보며 사는 모습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믿음의 유산에서 시작
가정에서 부모로부터의 믿음이 유산이 분명하면 신앙생활에도 큰 복이 있음을 본다. 교회라는 곳이 가정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그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함께 예배하는 곳이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눈에 보이는 교회를 어머니로 생각하며 신앙생활 할 때 복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런데 가정에서 믿음의 유산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오히려 교회를 떠나고 욕하고 교회를 비판하는 일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되는 것을 본다. 개혁이란 이름으로 몸 된 교회와 목회자를 공격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세상에 할 일이 없어서 교회를 욕하는가? 그것만큼 그 자신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러니하게도 그런 일에 앞장서는 장로들도 목사들도 많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친구이고 밥 잘 사주는 사람이어도 교회를 욕하고 부모를 욕하고 내 아버지 하나님을 욕할 때는 단번에 잘라내어야 한다. 너무 사랑이 없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함께 더불어 주님의 진로하심 가운데 같은 울타리 속에 머물러 있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 아니다. 연약한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 영혼에게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것은 귀한 것이지만 망해가는 자리에 함께 동석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적극적인 긍정론에 빠지는 것은 결코 유익이 없다. 하나님을 떠나가도 어릴 때 들은 말씀으로 세상에서 그래도 착하게 살겠지? 그것은 우리가 보통 은혜의 관점에서 기대하는 수준이지 결코 그렇지 않다. 내 자식이 그러할 때에는 피 흘리는 눈물로 주님 앞에 쏟아내어야 한다. 만사를 제치고 주님 앞에 기도해야 한다. 돈을 벌고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 자식을 위하여 기도하며 은혜를 구해야 한다. 회개하고 통회하며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그때부터 비로소 모든 회복의 역사가 시작이 될 것이다.
가정이 온전하고 교회생활이 복되고 세상의 일들에 형통함이 있기를 원하는가? 나는 과연 자녀들에게 무엇을, 어떤 신앙의 유산을 남기도 있는가에 먼저 겸손히 질문해 보아야 한다.
08.23.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