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 아름답고 복된 ‘고센’

- 이민의 땅, 믿음의 관점, 섭리적 은혜 -
전남수 목사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과 늘 함께 하신다. 애굽에서는 요셉과 함께 하셨고, 고센으로 이주해간 야곱의 자손들과도 함께 하셨으며, 훗날 출애굽의 여정부터 가나안에 이르는 광야길에도 함께 하셨다.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당신의 자녀들과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그곳은 복 받는 땅이 된다. 비록 거친 사막광야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그곳은 거룩한 땅이 된다. 마치 모세의 훈련장이었던 미디안의 거친 땅 떨기나무아래도 하나님이 계심으로 거룩한 땅이 되지 않았는가? 

이민의 땅 애굽에서 서슬 퍼런 바로왕의 권세와 모진 핍박과 고난이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고센 땅에는 하나님의 구별된 은혜가 넘쳐났다. 애굽이라는 세상한복판에서 작고 초라해 보이는 이민자들이었을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곳, 고센은 축복의 땅이었다. 고센 땅은 요셉과 관계가 있다. 요셉이 아버지와 형제들을 이집트로 초청하여 이민생활을 시작할 때, 바로 왕으로부터 그들의 거주지를 나일강의 마지막 부분인 비옥한 델타지역 즉 고센 땅을 선물로 받았던 것이다. 

'고센'이란 '접근함'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데, 하나님께 가까이함 즉 접근함이란 신앙의 염원을 담고 있는 지명이라고 할 수 있다. 애굽이라는 세계 초강대국의 한 켠에, 양식 찾아 먹고 살기위해 온 이민자의 무리들을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심으로 그들을 복되게 하셨다. 낯선 타국의 이민자로서 살아가지만, 저들은 고센을 믿음으로 아름다운 땅, 비옥한 땅으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섭리안에서 꿈을 해석하라

 

고센은 요셉의 꿈이 실현된 곳이다. 요셉은 형들과 부모 앞에서 자신이 꾼 꿈을 당당히 말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인 줄 확신하였고 언젠가는 그 꿈이 이뤄질 것으로 믿는 믿음이 있었다. 두 가지 꿈을 꾸었는데 고센에서 모두 성취가 되었다. 밭에서 곡식을 묶는데 형제들의 단이 요셉에게 절을 하더라는 것과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그에게 절하더라는 꿈이다. 

요셉의 꿈으로 인해 형들은 시기가 나서 흥분했지만,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다. 요셉은 이처럼 자신이 꾸는 꿈으로 인하여 그는 형들로부터 ‘꿈꾸는 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는 아주 조롱하는 말이었다. 그 조롱하는 질투가 그를 형제들로부터 죽음 같은 배신과 고통의 길을 가게 만들었다. 형제들은 요셉을 죽임으로, 자기들의 손으로 하나님의 꿈을 무효화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결국 요셉을 미디안 상인에게 노예로 팔리게 하였고, 오히려 꿈의 성취를 이루는 섭리의 과정이 되게 하셨다.

인생의 복잡한 일들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쓰임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의 꿈은 음모로 깨어지지 않는다. 이집트 땅 고센에서 하나님의 그 꿈은 아름답게 실현되었던 것이다. 요셉이 22년 만에 형들이 자기 발아래 엎드렸을 때, 그는 17살 때 꾸었던 꿈을 기억해 냈다. 그 꿈에 대한 기억들은 그의 지나온 모든 고난을 하나님의 간섭아래 있게 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은 놀랍고 틀림없는 분이시다. 인간은 잊어버려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잊어버리지 않으신다. 인간은 경솔히 여겨도 하나님께서는 귀중히 여기신다. 광야 같은 이민의 땅에서도, 꿈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잊지 않을 때, 고난조차도 꿈의 성취를 위한 아름다운 간증거리가 되게 하는 것이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라

 

이스라엘 자손들은 고센 땅에서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주실 때 제일 눈에 번쩍한 말씀이 바로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말씀이었다. 75세된 그에게 자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명받은 지 10년이 지나도록 자녀에 대한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처음 하나님께 질문을 한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요구에 동의하지 아니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이 이를 믿었는데, 하나님은 이를 의로 여기셨다. 믿음의 사람은 의인이다. 육신의 눈으로 볼 때는 별이었지만 믿음의 눈으로 볼 때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해 주신 후손임을 보았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고살기 힘든 가나안에서 400년을 지났더라도 장정만 60만 대군이 되는 약 300만 백성이 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4대 할아버지를 생각해 보고, 집안에 얼마나 많은 자녀들이 있었는지를 살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대부분 집안에 1000명 넘기가 힘들 것이다. 이에 비해 야곱의 4대손은 고센 땅에서 장정만 60만 대군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옥한 땅 고센으로 이들을 불러들여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 것이다. 70명 야곱의 가족이 이민을 오듯이, 우리자신들도 비록 작고 초라해보일지라도, 하나님을 믿으며 땅을 쳐다보고 낙심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기적 같은 은혜는 반드시 우리를 부흥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예비하시는 은혜를 기대하라

 

고센은 요셉을 선발대로 미리 보내시어 장차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을 지낼 땅을 미리 준비토록 하셨다. 요셉은 형들을 22년 만에 만나 자신이 요셉이라 밝히고 방성대곡하였다. 요셉은 형들에게 다음과 같이 간증한다. 그들이 자신을 이곳에 팔았으나, 근심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신 것이다.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었다. 

요셉자신도 알지 못했던 보디발 집에서 종살이할 때도, 또 옥중에 있을 때도, 또 총리로 있으면서 7년 풍년에 곡식을 넉넉히 사들인 후 7년 흉년을 준비하고 있을 때에도, 자기 삶에 간섭하시고 섭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모든 크레딧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는 것이다. 억울하고 원통한 일이 있어도, 섭리적 은혜를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 삶의 승리를 가져온다. 섭리적 은혜(Providential Grace)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까지 하나님의 간섭과 인도가 그치지 않는다는 믿음의 표현이다. 그러한 믿음과 은혜가 고센을 중심해서 이스라엘을 발흥케 한 것이다. 그냥 두었으면, 복수의 칼날과 핏빛이 난무했을 고센 땅이 은혜의 땅이 된 것은 바로 이 믿음 때문이다. 우리의 삶의 자리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

 

약속의 땅, 천국의 소망 

 

고센은 야곱이 생의 마지막 17년간을 지낼 수 있었던 땅이었다. 요셉이 17세 될 때까지 함께 지냈던 야곱은 그의 생애 마지막(130-147세) 17년을 사랑하는 아들과 고센에서 지낼 수 있었다. 야곱은 제일 사랑하던 아들 요셉이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살아 일국의 총리로 있는 모습만 보아도 행복했을 것이다. 두 손자를 품에 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흡족했을 것이다. 바로왕 앞에서 그동안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말했던 야곱이, 양식이 없어 구걸하듯 찾아왔던 야곱이 이제 더 이상 먹는 걱정, 입는 걱정, 사는 걱정이 필요 없게 된 곳이 고센이다. 그곳에서 야곱의 말년은 그야말로 안식의 연수였다. 참으로 마음고생, 육체고생을 많이 했으나 고센에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야곱은 평안히 노후를 안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열 두 아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서 그들을 축복하며 임종하며 그의 시신을 조상들이 있는 헤브론 막벨라 동굴에 안장할 것을 부탁하였다. 그는 비록 고센 땅의 평안을 누리고 있지만, 결코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믿음의 땅을 잊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이것이 야곱이 이 땅에서의 마지막 여생을 평안히 지난 비결이 될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아도, 아무리 누려도, 약속의 땅 천국의 소망을 품을 때, 진정한 안식과 평안의 복을 누리는 것이다. 나의 삶의 지경인 고센이 그러해야 할 것이다. 

 

용서와 관용, 용납

 

마지막으로 고센은 용서의 땅이었다. 형들이 요셉에게 행한 악을 인정하면서도, 아버지 사후 자신들의 안위를 염려하는 형들을 온전히 용서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사, 하나님께서 이를 사용하신 것임을 형제들에게 확정한 것이다. 사단마귀는 요셉의 형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하신 꿈’을 이루지 못하도록 온갖 음모를 꾸몄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음모조차도 선으로 바꾸시는 엄청난 일을 하신 것이다.

오래전 아미쉬 마을의 학교에 어떤 사람이 총을 들고 난사하여 어린아이들과 여러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아미쉬 형제들은 철저하게 주님의 말씀 그대로 순종하고 사는 평화주의자들이었다. 

 

모든 이들이 아미쉬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까 주시했다. 예상대로 이들은 희생당한 아이들을 묻으면서 "이들은 천국에 갔다"고 서로 위안하며, 총기를 난사하고 자살한 찰스 로버츠 4세를 용서했다. 특히, 살인자 로버츠의 장례에 참석했던 75명 중 절반이 아미쉬 마을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저들이 함께 눈물을 흘리며 애도하는 모습을 보고, 장례를 집전하던 목사님도, 그의 가족들과 친구들도 모두 눈물바다가 되었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한지 열흘 만에 그 사고 현장의 학교건물을 다 철거하고 밭으로 만들었다. 그 건물을 볼 때마다 좋지 않은 미움의 기억들이 생길까봐 다른 곳에 건물을 짓기로 하고 철거하였다. 

용서를 통해 고센 땅은 비록 애굽의 작은 지역에 불과했지만, 열두 형제의 가족들이 무럭무럭 먹고 자라며 하나님의 날을 예비하고 준비하는 거룩하고 구별된 장소가 되었다. 이민사회에서 가족 간에도 용납과 관용이 어려운 환경들이 있음을 본다. 그러나 용서하고 용납하고 관용하고 이해하는 것이 모두가 사는 길이다. 자신의 영혼이 살고, 가정과 가문이 살고, 교회가 살고 지역이 사는 길이다.

애굽의 고센 땅처럼, 미국이라는 나라의 한켠 땅에서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다. 잘사는 길이 무엇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들이 고센처럼 되기를 소망한다. 세월이 흘러도, 태평양을 건너던 그 꿈을 잊지 말자. 고난도 섭리 안에서 해석하자. 어렵고 힘이 들어도 땅을 보지말고, 머리를 들고 하늘의 뭇별들을 바라보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치지 않음을 믿음으로 구하라. 이땅이 아무리 좋아도 야곱처럼 돌아갈 곳, 천국을 잊지 말라. 마지막으로 이민의 삶은 척박하다. 자기중심적인 이기주의가 팽배하다. 그러나 용서와 용납과 관용이 모두를 살리는 길임을 기억하며 힘써 용서하라. 하나님께서 고센처럼 복을 주시고 누리게 하시었다가, 훗날 천국에서의 영화(Glorification)에 드는 복도 부족함 없이 누리게 하시리라.

 

07.13.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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