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죽는 날까지 그 권세를 빼앗지 않으셨다. 그의 삶의 마지막에, 그는 지면에 누구보다도 온유함이 승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셨듯, 그런 권세를 누리고 그런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살면 이 세상을 떠나갈 때 몸부림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원 없이 마음껏 주를 위해 사환처럼 충성했으니 그에 합당한 상 받는 일만 남았기에 죽음을 앞에 두고 손톱으로 벽을 긁다가 손톱이 빠지거나 죽음이 두려워 공포에 질린 채 그렇게 비참하게 죽을 일은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높아지려다가, 스스로 그 마음의 완고함을 품고 살아가다가, 마침내 저승사자에 끌려가듯 원망하며 떠나는 세상 사람과는 확연히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신앙의 인격과 향기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그를 늘 의식하며 사환처럼 충성하였듯이 우리도 늘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의식하는 것, 이것은 어떤 배움보다 더 중요한 신앙의 인격이며 향기이다. 그런 신앙의 인격이 될 때, 하나님은 마침내 그를 높여주신다. 사람들도 그 향기에 따라가게 될 것이다. 말끝마다 자기 자신이 나타나는 사람은, 사람도 싫어하고 하나님도 싫어한다. 그러나 말끝마다 주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면,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며,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기에 그를 존귀하고 아름답게 여기게 될 것이다.
교회의 일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들을 행할 때도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심을 의식하고 인정하고 충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별히 소유권이 강한 사람들이 있다. 내 것이 아니면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의 특징은 대개 내 것이라고 생각할 때, 내게 유익함이 있을 때, 사람들이 알아줄 때 열심히 일을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손에 하는 일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거나, 나에게 별 유익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 자신에 대한 사람의 인정과 칭찬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아주 엉터리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게 된다. 아주 어리석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예비하신 좋은 복들이 사람들과의 관계와 다양한 환경 속에서 구체화되고 드러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신자로서 모세와 같이 하나님 집의 사환처럼 ‘자기의 모든 것’을 관리하고 충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것에 대한 자기 소유의식이 지나치게 강하면 하나님이 넉넉히 주실 수가 없다. 하나님이 쓰시고자 달라고 할 때마다 억울한 생각, 본전 생각을 하고, 하나님과도 딜을 하려고 한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더 부어주실 수 있겠는가? 친히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준비해 두셨건만, 하나님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쓸 수가 없다면, 충성꾼의 삶은 불가능한 것이다. 일평생 충성스런 종으로 모세와 같이 사는 길은, 늘 주님을 의식하고 인정하며 사환처럼 충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를 아름답고 존귀하게 만든다.
예수님과 제자들
예수님의 충성은 모세의 충성을 넘어선다. 하나님의 집에서 아들로 충성하셨다. 예수님의 삶에도, 비록 아들이지만, 항상 아버지를 의식하는 아들로서 행하였음을 보게 된다. 아버지의 맡기신 일,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 아들로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또한 그 영광을 받으신 아버지는 다시 그 아들을 영화롭게 하셨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내내, 무엇을 하든지 일을 할 때마다 자기 것이 아니요, 다 아버지의 것이라고 늘 시인하셨음을 본다. 아버지의 맡기신 일을 당신이 그저 하고 있을 따름이라고 계속해서 그것을 시인하며 다니셨다. 결코 아버지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았던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자기들이 맡아서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배우고 예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예수님은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인정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시 그를 가르친 선생님을 인정하였음을 보게 된다. 그래서 그들의 충성이 아름답고 향기 나는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것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제자가 스승을 인정하고 높이며, 종이 주인을 인정하고 의식하고 높이며, 자식이 부모를 알고 섬길 때, 참으로 아름답고 존귀한 향기 나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고, 사람들이 보기에도 아름다운 일이다.
소속과 위치
신자와 불신자를 막론하고 소속과 위치를 잘 구별하여 처신하며 행동하는 사람을 인격이 된 사람으로 사람들은 인정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공부하고 논문을 쓸 때, 어느 책에서 보았다고 항상 자기가 얻은 지식의 출처를 밝힌다. 논문을 쓰면서 주를 달아주므로, 남의 책을 보고 내가 그분의 것을 가져왔다고 써 놓는 것이다. 내가 배워서 아는 것이지만 내가 누구에게서 배웠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비록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자기 것이 아님을 드러내는 인격이 있으며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서 교양을 가진 사람이라고 인정한다.
그런데 못된 사람들은 스승에게서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스승을 인정하지 않는다. 학생이 선생님에게 주먹질 하는 기사를 보게 된다. 아버지가 자기를 낳아서 자기가 지금 존재하게 되었음에도 인정하지 않는다. 내 아버지가 못된 인간이라고 해도, 내가 싫어도 인정을 해야 하고 좋아도 인정을 해야 아름다워지는 데 그렇지 않다. 조건과 환경 때문에 스승을 스승으로, 아버지를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런 인생은 더 이상 제자도 아니고 자식도 아님을 스스로 공표하는 것이다. 나의 삶의 기원은 누구인가? 내 부모가 누구인지? 나를 사람 되게 가르치는 스승은 누구인지? 그것을 모르면 결국은 짐승수준으로 전락을 하고 마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지만 짐승처럼 사는 것을 보게 된다.
복된 신앙의 인격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어떻게 은혜를 받았는가? 뱃속에서부터 은혜를 받았는가? 내가 잘 나서 스스로 깨달아 아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내가 예수님께 나아오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이 없으면 우리 인생도 없는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세상의 삶들 가운데서도 이러한 기본적인 것만 아는 신앙인이어도,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복을 누리게 된다.
냉수 한 그릇이라도 예수이름으로 했으면 감사할 것이다. 그래서 영광 받을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 돌리고, 잘못된 것은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고, 비록 내가 주체로 살아가는 듯 하지만, 실제적인 주체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늘 인정하고 사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스스로 호흡하고 살지만, 오늘날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생각하며 언제나 하나님을 인정하는 복된 신앙의 인격으로 사는 길이다. 이것은 내가 배우고 못 배우고, 가지고 못 가지고,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 과연 이것은 아름다운 삶이요 신앙의 길을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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