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참 소망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을 것
전남수 목사

신년 초 성도들의 기도제목을 정리하여 매 기도시간마다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고 있다. 두 달여 기도하면서 어느 날 새벽 베드로전서의 말씀을 전한 뒤, 돌아서서 기도를 하는 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초대교회 당시의 힘든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위해 베드로 사도가 전한 메시지를 방금 설교했는데, 금새 뒤돌아서서 너는 성도들을 향해 무엇을 기도하느냐? 하는 음성이었다. 방금 전한 말씀과 너무 충돌되듯 기도하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었다. 

 

참 그리스도인의 소망

사막광야 같은 이민생활 가운데서 성도들이 잘되게 하시고, 복을 받아 누리게 하시며, 범사에 형통케 해달라고 간절하게 부르짖는 것이었다. 그러나 초대교회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증거된 참 소망이란 무엇인가? 저들의 형편은 철저한 약자의 입장과 형편이었다. 고아와 과부와 약자로 상징되는 주님의 긍휼이 필요한 자들이었는데, 저들에게 베드로가 간절하게 구한 것이 무엇이었는가? 오늘날 이민자로 대표되는 삶의 척박함이 느껴지는 이들에게 과연 목회자들이 전하는 말씀과 기도는 어떤 것인가? 하나님의 생각과 충돌하게 되는 것을 본다.

베드로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 생존하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향해, 무엇보다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선포한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얻도록 구하며 기도하도록 강권하는 것을 본다. 오늘날로 말하면 이민 땅에서 죽도록 고생하는 이들을 향해서 돈 잘 벌고 성공하고 출세하라는 말을 들어야 마땅하고 듣기를 원하지만 저들의 원함과 다른 말씀을 선포한다. ‘너희는 이 땅의 것을 구하지 말고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얻도록 구하라’며 선포하는 것이다. 

 

영원한 참 소망

돈 벌고 부자 될 수 있다는 것도 소망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누리는 복이란 것은 모두가 제한적이고 유한한 것임에 다름 아니다. 새 차를 사고 즐거워한다. 그러나 10년만 지나도 말씀대로 외장과 내장이 썩어 들어가 폐차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새 집을 사서 누워보면 좋고 안락함을 얻는다. 그러나 곧 익숙함으로 인해 효용의 가치는 감소되지 않던가? 베드로의 말과 같이 모든 것이 썩고, 더러워지고, 쇠하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죽도록 고생하고 산다는 이민자들에게 무엇을 전해주어야 영원한 참 소망을 소유하고 누리게 될 것인가? 저들을 위해 무엇을 빌고 바래야 할 것인가? 돈을 벌고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참 소망 예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참 말씀이 기도의 제목이 되고 설교의 제목이 되고, 저들은 순종하여 그 말씀이 삶의 지향점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약자를 넘어선 기독교

기독교가 세상에 대해 힘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음을 본다. 조국 대한민국을 바라보면, 다니엘과 같이 깨어 근신하며 조국을 향해 더욱 간절한 기도의 울림을 가지게 된다. 총리도 교인이고 국회의원의 3분의 1도 교인이고, 도지사와 장관들의 다수가 교인임을 본다. 기독교가 늘 사회적 약자였는데, 이젠 주류 강자가 되었음을 증명한다. 힘도 가지고 있다. 대형교회들이 가지는 그 힘이 엄청난 것을 목도한다. 그러나 기독교로 통칭되는 이들이 가진 그 많은 강한 힘만큼 또한 더욱 크게 탄식하는 세상의 소리를 듣게 된다. 

거대한 정치 집단이 자신들의 정파적 이익을 위해 온갖 힘과 모략으로 일들을 밀어부침으로 곧 무너져 내릴 모래성을 쌓고 있는 것처럼 기독교의 모습이 그와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독교의 거대한 물결의 힘이 온갖 엄청난 일들을 다 해낼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저들이 정말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지에 대한 탄식이 떠나지 않음을 보게 된다. 

 

절대적인 회복의 회개

지금 우리에게는 절대적인 회복이 필요하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세상의 겉모양은 화려해지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계속 황폐해질 것이다. 단순히 선하고 좋은 어떤 것의 첨가로서의 회복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의 완전한 구속을 통한 전인적인 회복과 그로 인한 참된 자유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은 모든 세상 죄에 대한 매임과 죄악에서 벗어나, 마귀에게 속박되었던 삶에서 자유케 하시기 위함이다. 이러한 회복은 오직 갈보리 십자가 밑에서 가능한 유일한 회복을 말한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화목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회복과 자유는, 주 예수 안에서 철저하게 매인 바 되고 구속되어야 얻고 누리게 되는 것이다. 철저하게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고백하고 회개해야 한다. 낮아지고 낮아지고 엎드려져야 한다. 심령이 뜨거워져야 한다. 기도도 뜨거워지고, 말씀을 통해 뜨거워지고, 성령의 불로 뜨거워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갈보리 십자가 앞에 회개하고 나아가야 한다. 십자가 앞에서 참된 회개만이 회복의 길이다.

 

세상에 초점 맞춘 죄

하나님은 우리와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시기에 우리는 우리 모든 삶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춰서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외에 다른 것 곧 세상, 물질, 명예, 쾌락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죄이다. 우리 삶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지 않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는 것이 바로 죄이며 하나님 뜻대로 살려는 의지가 없는 것이 바로 죄이다. 

오늘날 세상은 총체적인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모든 분야에서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우리들이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아버지 없는 고아로 방황하면 살고 있다. 회복을 기도하지만 회복을 기도하기 전에 왜 이런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되었는지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은 죄악 때문이다. 뉴스를 보면 이 시대의 죄악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사람들이 지을 수 있는 모든 죄는 다 짓는 것 같다.

 

교회를 통한 회복

과연 교회는 하나님 뜻대로 살려는 의지가 있는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신다. 오늘날 세상과 교회는 구분이 되지 않는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가? 많은 교회들이 배에 물이 차 가라안기 일보직전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러한 순간에도, 죄악을 끌어안고 회개하고 바르게 살아가기를 결단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기 위해 주께 회개하며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처럼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도록, 하나님 말씀을 바로 깨닫도록, 말씀을 깨닫는 대로 실천할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바라며 간구해야 한다.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 엎드려 회개하고 자백하며 기도하고 실천한다면 다시 회복의 하나님은 이 땅을 새롭게 하셔서, 당신의 정의와 공법을 강물처럼 흐르게 하실 것이다. 주여 우리를 살려 주옵소서!

 davidnjeon@yahoo.com

 

02.23.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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