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수 목사 (알칸사 제자들교회)
자신이 궁핍하여도 남에게 주는 자들이 있음을 본다. 자기형편 생각하지 않고 이웃에게 나누고 베푸는 그런 분들을 보면 절로 복 받기를 기도하게 된다. 성경의 뜻도 그러하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모습들을 보며 주제 파악을 못한다고 할 것이다. 자기 꼬라지가 그러면서 어떻게 남에게 퍼주고 사느냐고 말할 것이다. 바보스럽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한결 같이 돕고 나누고 베푸는 그런 분들에게서 결국 하나님이 베푸시는 특별한 은혜를 보게 된다.
복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설
성경은 뿌린 대로 거둘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이것을 분명히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역설이 많다. 우리 생각으로는 다 헤아릴 수 없다. 자기 목숨을 잃어야 오히려 살게 된다(눅17:33)고 하신다. 내가 죽어야 많은 열매를 본다(요12:24)고 말씀하신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마20:27)고 말씀하신다. 성도의 세상살이를 복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설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면, 아이의 도시락 한 끼를 드림으로 어린아이까지 2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일들을 보게 된다.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다들 배불리 먹었으면 되었지 남은 것을 거두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다 가져오라고 하셨다. 거둬서 뭘 하시겠다는 것인가? 그렇게 많은 사람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를 얻었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가진 것이 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였는데, 이렇게 주고 나누면 거두어들인다는 원리를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함 봐라’는 주님의 역설, 주님과 함께하고 배고픈 빈들에서 나의 형편을 넘어서서 나누게 될 때 어찌되는가를 분명하게 증거하시는 내용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라고 하면 그것 때문에 거덜 날 줄 아는데 주라고 하는 것은 그 만한 것을 도와주고도 너희에게 남는 것이 있을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시는 사건의 한부분이다.
한 여인이 자기의 비싼 옥합을 주님께 부어드릴 때 낭비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것은 마귀적인 것이다. 예수님은 좋은 일을 했다고 칭찬하셨다. 낭비나 허비가 될 수 없는 일이다. 낭비가 무엇인가? 아무렇게 쓸데없이 그냥 비싼 걸 버리듯이 했다는 뜻인데, 오히려 우리 주님은 이것을 보고서 좋은 일을 하였다고 말씀하시고 그것을 비판한 가룟 유다에게 ‘너는 모른다. 너는 알지 못한다. 너는 깨닫지 못한 자’라고 말씀하셨다. 반면에 마리아에게는 주님의 풍성한 칭찬이 돌아왔던 것이다. 신앙생활하면서 주님께 칭찬받는 일보다 큰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
주는 성도 주는 교회가 복이 있음
좋은 것을 많이 나누고 뿌리는 성도들이 모인 교회는 복이 있다. 주님이 교회를 설립한 목적이 된다. 교회를 생각해보라. 아무것도 주는 것 없이 돈만 모아서 건물만 크게 짓고 자기들끼리 먹고 잔치하면 교회가 어찌되겠는가? 사회로부터 좋은 소리 듣겠는가? 그렇지 않다. 성도들의 삶에 복을 보기 어렵고, 교회의 미래와 저들 삶의 영역에서도 좋은 열매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다.
LA폭동이후 이민사회의 반성에서 나온 내용 중 하나이다. 한인들은 미국에 와서 돈 벌 목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흑인 동네에서 마켓을 열고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백인동네에서 마켓을 연 사람은 극히 드물었고, 대부분 흑인들이 밀집한 곳에서 거기서 가게를 하며 주얼리 팔고 옷 팔고 티셔츠 팔고 그렇게 돈을 모았다고 한다. 그 결과, 돈을 벌게 되니까 동네 들어올 때는 영어도 못하고 거지꼴로 들어왔는데 실제로 보니 돈 벌어서 비벌리힐즈에 집 사고 차는 벤츠타고 다니고, 그런데 일하러 올 때는 털털 거리는 차를 타고, 흑인이 물건 하나 훔쳐 가면 니그로라고 욕을 하니까 흑인들이 흥분하며 집중 공격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흑인동네 가서 돈을 벌고도 동네에서 잔치가 열리거나 커뮤니티에 필요한 게 있으면 땡전 한 푼 내놓는 사람이 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폭동이 일어나니까, 그때 한국 사람들이 직접적 원인이 아님에도 엄청나게 많은 재산을 잃었다 한다. 게다가 텍스보고를 제대로 안하니까, 가게는 불타 버리고 정부가 됐든 보험이 됐든 텍스보고 한 게 없으니까 근거가 없어서 피해복구에 어려움들을 보았다는 것이다. 어찌 이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겠는가? 그러나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자신의 부족함을 크게 보고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복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이 사건 이후로 어려움도 많았지만, 이민사회에 나눔을 실천하는 새로운 경종의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경제학-먼저 주라
죄성을 가진 인생은 주는 것과 나누는 것에 인색하다. 신앙생활이 바닥을 칠 때에 드러나는 현상은 주는 게 억울한 거 같고, 시간 들이고, 돈 들이는 것을 억울한 것으로 말한다. 나중에는 하나님께 드린 것마저도 돌려달라고 원망의 소리를 한다. 지극히 어리석은 모습이다. 은혜를 받았는가? 삶속에서 은혜에 합당한 실천이 있어야 한다. 말씀순종에 대한 열매는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은혜에 넉넉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세상살이에서도 인색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어야 한다. 누가복음 6장 38절 말씀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세상은 주는 것이 있어야 받는 것이 있다는 기브 앤 테이크를 말한다. 그러나 성경, 하나님의 경제학은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줄 것이니 먼저 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경제학이요, 역설적인 논리이며 진리이다. 이것이 진리를 아는 성도의 세상살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달리 성경에 입각한 역설적 경제 원리를 따라 우리가 살아가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인 우리가 하나님의 경제학을 몰라서는 풍성해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돈을 긁어모아서 저장하려는 건데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부지런히 주는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주는 생활을 해야 한다. 반드시 그 말씀대로 하나님 앞에 받을 것이요, 후히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게 해서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는 약속의 성취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행복과 축복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축복과 행복은 움켜지는 게 아니라 나눠주고 베푸는데 있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다. 남에게 나눠 줄줄 모르고 어떻게 해서든지 남이 어떻게 되든 모으려고만 하는 사람은 재산은 모을 수 있지만 행복을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 주님의 말씀이다. 그런 사람은 근심과 걱정을 모으는 것이고, 나중엔 신경쇠약, 노이로제에 걸려서, 정신병으로 찾아가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소유해도 그 다음에 오는 허무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만다면 정신질환에 빠지게 되고 마귀가 끌어가는 인생이 되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복을 얻었지만, 그 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비록 저축은 하지 못해도 하나님께 드리고 난 나머지를 남에게 나눠주는 그 사람은 뱅크에 돈은 없을지 몰라도 결국은 많은 것을 세상에서 얻게 되는 놀라운 축복이 있음을 보게 된다. 성도들이 받은 것을 움켜쥐기만 하고, 쓸 줄 모르면 마침내 죽은 인생이 된다. 그러나 나눠주는 성도들은 결국 갈수록 기뻐하고 나중에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는 사람이 되는 것을 본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행복한 사람, 복된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훈련시키고 우리를 가르치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후히 주라! 그러면 너희에게도 줄 것이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주는 것에 대해서 인색하거나 불평하는 사람은 복이 없다.
교회의 부흥-나눔
교회도 마찬가지다. 사도행전 초대교회 시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라. 그들은 성령이 임하자마자 저들은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차고 넘쳤다. 사도행전 2장에 성령이 강하게 임했는데 그 후 저들의 삶이 어떠했는가?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고 함께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고 기록한다. 더불어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는데,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신다. 교회가 막 가득 차게 되어서 교회 부흥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중요한 게 ‘함께 나누었다’는 것이다. 예수의 은혜도 나누고, 물질도 나누고, 기쁨으로 섬김으로 마침내 교회의 아름다운 부흥, 주님의 뜻을 저들이 드러내었다는 사실이다. 교회가 부흥하기를 원하는가?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 성도의 삶을 살기를 원하는가? 인색함을 버려야 한다. 나눠주는 은혜가 우리에게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심지어 사도행전 2장35절에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고까지 말씀하신다. 그래서 복된 성도가 되고 복된 가정이 되고 복된 국가가 되고 복된 교회가 되려면 인생의 목적이 움켜잡고 소유하는데 있는 게 아니라 나눠주는데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미국의 축복-나눔
미국의 원조를 받지 않는 나라가 없었다. 이 나라의 통치가 주는 개념이었는데, 이제는 못 주겠다고 한다. 가지고 움켜쥐려고 한다. 우리 자신들만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트럼프가 하니까, 크리스천 신앙의 개념이 깨어지고, 이것이 미국을 위한 정치라고 하지만 오히려 삶은 덜 행복해하는 것을 본다. 갈등과 분열이 격화되었다. 지금까지 미국은 수많은 나라에 많은 것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이 미국이라는 나라는 경제대국이 되었고, 중국의 ¼ 밖에 안되는 인구가 기침 하나로 중국을 주무르게 되었었다. 러시아가 그렇게 땅이 크고 인구가 있어도 미국의 3억5천 인구를 어떻게 능가하지 못한다. 주는 자에게 주시는 복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가? 그러나 그 흘린 희생의 피를 통해서도 계속해서 주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들을 축복하셔서 오늘날까지 미국만큼 전 세계에 복 받은 나라가 없는 것이다.
중국만 하더라도 뭘 하나 도와주면 속국으로 삼으려 한다. 기분 나쁘면 고약한 힘으로 막 작은 나라를 부시려고 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입양아를 키우는 나라가 어디인가? 미국이다. 전 세계 아이들을 입양하는 최고의 국가이다. 1년에 5만명이 들어온다고 말한다. 수많은 고아들이 입양돼 미국 가정에 들어와서 살고 있지 않은가? 또 얼마나 많은 민족들이 들어와서 살고 있지 않는가? 이런 미국이 망했는가? 아니다. 오히려 강대국이 되었고 하나님은 채워 넘치게 해주셨다. 그런데 요즘 미국은 그 방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움켜쥐는 쪽으로 가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미국이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복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된다.
인색함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가 아님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사업이나 교회 사업은 돈을 많이 쓰면 쓸수록 손해가 아니며 낭비가 아니라 큰 유익이요, 행복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아까워도 하나님을 위해서 기회가 있는 대로 써야 한다. 그리하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반드시 되돌아오되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신앙의 문제만이 아니다. 가정과 교회와 민족과 국가도 주님 말씀 따라 나누고 베푸는 그런 은혜를 가지게 될 때 하나님의 예비하신 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인색함은 결코 그리스도인의 세상살이 삶의 원리가 아니다. davidnjeon@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