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1955년에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마르셀리노의 기적(Miracle Of Marcelino)」이라는 흑백영화가 있다. 스페인의 한 수도원에서 발생한 기적적인 사건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영화다. 주인공 마르셀리노라는 소년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수도원 앞에 버려진 고아다. 수도원에는 열두 명의 수도사들이 살고 있는데, 마르셀리노는 그들의 손에 의해 길러진다. 고아는 부모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수도사들의 사랑을 받으며 구김살 없는 장난꾸러기로 성장한다. 어느덧 5년이 흘렀을 즈음에 귀여운 악동으로 자라난 마르셀리노는 누구나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어머니를 그리워하게 된다.
이 수도원에는 출입이 금지된 다락방이 하나 있다. 그런데 호기심 많은 마르셀리노는 어느 날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 금지된 다락방으로 올라간다. 거기서 마르셀리노는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예수상을 본다. 예수님은 한없이 배고프고 지친 모습을 하고 있다. 마르셀리노는 그날부터 수도사들 몰래 부엌에서 빵과 포도주를 훔쳐서 예수님에게 가져다준다. 놀랍게도 몹시 배가 고팠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와 소년이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는다.
예수님은 마르셀리노에게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말씀한다. 마르셀리노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하자 예수님은 그러면 잠을 자야 한다며 마르셀리노를 품에 안고 재운다. 마르셀리노는 예수님의 팔에 안겨 보고 싶은 어머니가 있는 하늘나라로 올라간다. 그런데 마르셀리노를 미행하던 수사가 이러한 기적적인 장면을 목격한 후, 이 소식은 온 마을로 퍼지게 되어 마을 사람들이 수도원으로 몰려든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기적’에 관한 것이 아니다. ‘신앙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관객은 십자가상의 예수님이 팔을 뻗어 빵을 받아서 먹고, 십자가에서 내려와 소년과 대화하는 초자연적 사건을 보는 데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홀로 버려져 있던 다락방의 배고픈 예수님에게 빵과 포도주를 가져다주는 사람은 경건한 수도사들이 아니라, 어린 소년이었다는 점이다. 수도사들은 그들의 주님인 예수님이 공급해 준 음식을 감사하며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뿐이다. 그러나 마르셀리노는 거꾸로 그 음식을 배고픈 예수님에게 가져간다. 누가 진정 예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고 섬기는가.
어린아이가 배고픈 예수님을 찾아낸다. 어린아이가 그 분의 진정한 벗이 되고 그 분의 말씀에 귀 기울인다. 청결하고 맑은 영혼을 소유한 사람만이 배고픈 예수님을 만날 수 있으며 그분에게 빵과 포도주를 가져다줄 수 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말씀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이 공명된다. 예수님을 추종하는 수도사들이 그의 이름으로 배불리 먹는 동안 굶주린 예수님은 다락방에 무심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예수님을 섬기는 수도원에서조차 예수님이 굶주리고 춥고 외로웠음을 비쳐주는 영화의 이 장면에서 우리의 내면 세계와 교회의 현실이 아프게 오버랩 된다. 길거리, 시장바닥, 극장, 술집에서 예수님이 그러한 푸대접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하는 수도원에서 그러했다는 이 흑백영화의 설정은 우리에게 통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다락방 한 귀퉁이에 굶주리는 예수님을 방치해 둔 채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거룩한 예배와 화려한 행사 가운데 정작 예수님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예수님을 잃은 공동체는 회칠한 무덤에 다름아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이 배고프고 외면당하시지 않도록 예수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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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5.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