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봉호 공인장례사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컴퓨터공학 석사학위를 공부하기위해 미국으로 왔다.
어린 시절부터 남을 도와주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받고 자란 그는 석사학위 이후 처음 뉴욕 플러싱에 위치한 여성 노숙자 보호소에서 처음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마음을 다친 여성 노숙자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봉사를 하다 그곳에서 사망한 한 노숙자의 장례식에서 처음 공인장례사에 대해 알게 됐다.
이후 공인장례사가 되기 위해 다시 공부를 시작. 1988년 장례사 국가고시를 통과하고 본격적으로 공인장례사의 길로 들어섰다.
컴퓨터공학도로 봉사활동 중 공인장례사의 길 걷게 돼
숙원 사업 ‘노숙자보호시설‘ 건립...2021년말 청사진준비
이후 1990년, 한인상권과 중국상권이 교차하는 플러싱 메인스트리트 부근에 중앙장의사를 최초로 개원해 지금까지 30년이 넘게 뉴욕내 한인과 중국 커뮤니티의 올바른 장례를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하봉호 장례사는 장례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남은 가족들의 '화합'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고인이 남긴 재산을 놓고 가족 간에 큰 싸움이 벌어지는 것을 많이 지켜보면서 안타까움이 컸다고 말한다. 상처를 준 사람들과의 화해, 특히 가족들 간의 화해가 장례과정에서 꼭 필요하며, 그들을 다독이고 중재해 장례가 잘 마무리되도록 돕는 게 장례사가 할 일이라고 언급했다.
하 장례사가 운영하는 중앙장의사는 '하늘가족재단'을 설립해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봉사를 계속해오고 있다. 하 장례사의 배우자인 황미광 박사가 이사장인 하늘가족재단에서는 추석맞이 성묘, 묘지 꽃 심기, 가족사랑 글짓기 대회, 자살방지 세미나 등의 행사를 통해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인 고 김복동 할머니, 고 최귀옥 할머니의 추모 분향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하 장례사는 고아나 부모 없이 자란 아이들, 입양아들에게 특히 마음이 쓰인다고 한다. 부모의 축복 속에 자란 아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이 사회에 많이 있다며, 그 아이들을 지원하고 후원하는 일을 더 많이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하 장례사의 최종 목표는 노숙자를 위한 보호시설을 세우는 일이다.
하 장례사에 따르면 현재 뉴욕시내 한인을 상대로 하는 노숙자 쉘터는 4개 재단에서 운영하는 다섯 곳이다. 사랑의집, 나눔의집, 주님의식탁, 무지개집이 그곳이다. 이 쉘터들에 직접 거주하는 노숙자 그리고 직접 거주하지는 않지만 이들 재단이 관리하고 있는 거리의 노숙자를 포함해 한인은 약 100여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 장례사는 자신이 만 70세가 되는 2021년 11월에는 이를 위한 청사진이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며 현재 주변에 자문을 구하고 있다고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다.
<로시김 객원기자>
02.22.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