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영혼, 말씀 통해 새롭게 나아가게 한다!

리더십저널, 프랭크 루이스 목사의 ‘깨어진 이들을 고치는 설교 이유’ 게재

여기저기에 상처 입은 영혼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처 입은 우리를 고치시고 더 값지게 하신다. 따라서 목회자는 깨어진 이들을 고치는 설교를 통해 희망과 비전을 다가오는 새해에 선포해야 한다고, 테네시 주 내슈빌제일침례교회 담임목사 프랭크 루이스는 권면한다(Preaching that Restores).

과도하게 헌신적인 사람이 상처입기 쉬울 때가 많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른다. 얼마 동안을 별 문제 없이 지낼 수 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피로와 슬픔, 낙심이 아우성칠 것이다. 깨어진 사람들에게 설교한다는 것은 또한 이런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두 교회에서 목회를 했다. 첫 번째는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개척교회였는데, 거기서 10년을 섬겼다. 교인의 거의 절반이 우리 교회에 합류했을 때 이미 강력한 기독교 신앙 배경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머지 절반은 종교적 배경이 전혀 또는 거의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에 많은 이들은 우리 교회로 오게 되었을 때 이미 깨어지고 빈털터리가 된 사람들이었다. 자신들도 그걸 알고 있었다.

채드와 제니퍼 부부(가명)도 그랬다. 둘을 처음 만난 것은 어느 주일 아침이었다. 이십대 초반의 이 부부는 갓난아기를 안고 예배당 안으로 들어왔다.

채드는 반바지에 야구모자 차림이었다. 제니퍼는 염색한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화장하지 않은 맨 얼굴에 생머리였다. 나는 금방 우리 교회에 처음으로 “X세대”가 왔다는 걸 알아차렸다.

예배가 끝나갈 무렵 채드와 제니퍼는 폐회기도 하는 사이에 나가버렸다. 누구와도 말을 건네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 다음 주일예배에도 그들은 예배에 참석했다. 나는 그들과 인사를 나눴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특권도 누렸다. 둘은 세례를 받았고, 성경공부 모임에서도 성도들과 사귀는 것 같았다.

몇 주 지난 어느 주일날 예배가 끝난 뒤에 채드가 내게 다가와 주중에 자기네를 만나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두 사람이 성경 읽는 것이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가정을 세우는 것 같은 질문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두 사람은 전혀 예상 밖의 질문을 해 나를 놀라게 했다. 채드와 제니퍼는 내 연구실에 앉아 이렇게 질문했다. “목사님은 가계 수지를 어떻게 맞추세요?” 나는 깜짝 놀랐다. 채드의 두 번째 질문은 이랬다.

“저는 매일 차고를 청소하고 최저 임금을 받고 있어요. 그 일도 일주일에 17시간밖에 못해요.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요?”

채드와 제니퍼의 부모들은 전형적인 맞벌이 부부였다. 두 사람의 부모님들은 그들이 어릴 때 거의 곁에 없었다. 숙제는 했는지, 학교에서 돌아와 저녁까지 어떻게 지내는지 아무도 챙겨주지 않았다.

가정경제나 장래계획, 직업, 심지어는 어떤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지조차 가족끼리 의논해본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행복을 찾아 여기저기를 기웃거렸지만 결국 상처만 남았다.

채드와 제니퍼 같은 X세대에 대하여 전혀 몰랐지만 두 사람에게 안전망을 쳐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나는 “X세대”를 위한 목회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온라인 채팅룸에서 깨어진 X세대에게 설교하고 목양하는 법에 대해서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한 마디를 발견했다. “X세대를 목양하고자 한다면, 그들에게 다시 부모가 되어주어야 한다.”

이 젊은 세대에게 설교하려면 부모의 심정이 되어야 했다. 그들에게는 코치, 멘토, 가이드가 필요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나는 많은 성도들에게 이런 저런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혼, 버림받음, 사랑하는 이의 죽음, 파산, 불행한 선택

설교 컨퍼런스에서 릭 워렌 목사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사람들은 다들 자신이 나쁜 처지에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아질 수 있는지를 들려주어야 한다.”

좋은 소식을 들을 때면 사람들이 수용적인 자세가 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복음의 좋은 소식은 상처 입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목회지는 바로 이곳 내슈빌이다. 나는 여기서도 동일한 것을 발견했다. 라스베이거스와는 한참 다른 이곳에서, 나는 우리 교단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한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우리 교회가 있는 이 도시에는 교단 출판사가 다섯, 종교기관이 세운 대학과 신학교도 여럿 있다. 한 마디로 바이블 벨트의 버클 부분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곳에도 여전히 상처 입은 이들이 있다.

남편이 아닌 세 번째 남자와 살고 있는 카렌 얘기도 할 수 있고, 교도소에 간 아들을 둔 부모, 재혼생활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옛날 버릇을 못 고쳐서 아마도 조만간 또 이혼하게 될 것 같은 사업가, 우리 동네 길바닥에서 자는 노숙인 여자도 있다.

간통, 동성애, 약물중독, 포르노중독, 도박, 기타 등등 온갖 종류의 상처 입은 영혼들이 여기 있다. 그리고 그런 영혼은 네온이 밤거리를 장악한 도시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번 주일 당신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설교를 해야 한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맞는 프리사이즈 메시지를 가지고 접근하지 않으셨다. 그는 우물가 여인에게는 생수 이야기를 하셨다. 계산이 빠른 세리들에게는 회계 용어로 말씀하셨다. 깊은 밤에 찾아온 구도자에게는 상징적 이미지로 설명하셨다.

설교자로 부름 받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창의적인 설교를 해야 한다. 당신이 어떤 설교를 준비하고 있든, 당신은 성경의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출발, 두 번째 기회, 새 출발 같은 주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깨어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그 아버지와 같이 인내와 사랑으로 당신의 아들을 기다리는 분이심을 알려 주어야 한다.

복음의 정수를 단순하게 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수님은 “첫째, 둘째, 셋째” 삼대지 설교자가 아니셨음을 명심하라. 주님은 보통 원 포인트 설교를 하셨다.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유머를 사용하시고 사람들이 이해하고 알기 쉬운 이미지를 보여주셨다. 주님은 메시지를 청중에게 맞추셨다. 그리고 늘 거룩함과 섬기는 지도자의 성품을 생생하게 보여주셨다.

당신이 살고 있는 곳에 있는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설교할 때,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하라. 관념이 아니라 실제를, ‘여러분’이 아니라 ‘나’를, ‘스스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설교하라. 성경이 그들에게 말하게 하라.

스트레스성 골절은 휴식을 취하고 뼈에 무리를 주는 체중을 줄이면 고칠 수 있다. 일단 골절이 치유되면, 뼈는 전보다 더 강해진다. 그러나 골절을 유발하는 생활 습관을 바로잡지 않으면, 또 다시 부러질 것이다.

상처 입은 영혼을 위한 설교는 그들에게 은혜를 전해줄 뿐만 아니라 또한 교훈과 교정의 역할도 한다. 우리는 한때 결단을 요청하는 설교를 전도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 결단은 종착지가 아니다. 결단은 여정의 출발이다.

02.28.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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