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신약 (7) - 마지막 일주일(1) 종려주일부터 화요일 오후까지

3가지 비유로 유대인 죄상 폭로...세금, 부활, 신학논쟁에서 승리하심
김덕수 목사

생터성경사역원 LA 지부장
하늘소망교회 담임

지난 시간에 우리는 예수님의 초막절, 수전절 설교를 들었습니다. 오늘은 네 번째 유월절이 있던 그 주간이 시작되는 주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장면과 이어지는 월요일, 화요일에 있었던 사건의 현장에 예수님과 함께 동행해보려고 합니다. 

 

종려주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심(마21장, 막11장, 눅19장, 요12장)

예수님께서는 처형되시기 5일 전 주일에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옷과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에 폈습니다. 그리고 호산나를 외치며 환호하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이제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마21:9, 막11:10) 그들의 눈에 예수님은 정치적 메시아로 보였던 것입니다. 이들이 생각하는 평화와 예수님께서 주실 평화는 달랐습니다. 그것을 아시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보시며 슬퍼하며 우십니다(눅19:41-44). 

 

△월요일-성전 청결

월요일 아침, 예수님은 제자들과 다시 예루살렘으로 오셔서 성전에 들어가십니다. 첫 번째 유월절에 하셨던 것처럼 다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고 그들의 상을 엎으셨습니다. 안나스의 영업장소로 전락한 성전을 깨끗하게 정화하실 때, 성전에 있던 각종 환자들-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나와서 예수님께 나아옵니다(마21: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마치 부패하고 타락한 성전의 상태를 이 환자들을 통해서 보여주시며, 그들을 고치시는 장면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성전을 회복시키시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합니다. 

 

△화요일 아침 

화요일 아침,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성전으로 들어가시다가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저주하시고, 성전에 들어가서 말씀을 가르치십니다(마21:18-23).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도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아니면 사람으로부터냐?”라고 역질문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질문하신 의도는 ‘세례 요한을 이해하지 못하면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를 이해해야 세례 요한 뒤에 등장하는 메시야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질문에 대답하기가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그 세례가 하늘로부터라고 대답을 하면 “왜 순종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받게 되고, 사람으로부터라고 대답을 하면 세례 요한을 따랐던 많은 사람들을 일순간에 불순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했던 대답은 “모른다”(마21:27)였습니다. 

이 대답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저들의 실체를 폭로하시는 세 가지의 비유(두 아들의 비유, 포도원농부 비유, 혼인잔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이 세 가지 비유는 모두 스스로를 선민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유대인들의 죄상을 폭로하시고, 오히려 그들이 정죄했던 죄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구원을 얻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도 간절했습니다. 그런데 쉽게 예수님을 죽일 수 없는 이유는 엄청나게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눅22:1). 그래서 이들이 생각한 것은 ‘신학 논쟁을 통해서 예수님을 이단으로 몰아서 예수님을 죽여야 할 명분을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께 신학논쟁을 걸어옵니다(마22:15). 

 

△화요 신학 논쟁(마22:15-46)

먼저 바리새인들이 그들의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님께 보냅니다. 그들의 질문은 가이사에게 바치는 세금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세금은 주권에 대한 문제입니다. 내가 세금을 바친다는 것은 나의 주권이 세금을 받는 자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은 어려운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라”라고 대답하신다면, 지금까지 ‘하나님이 주인이신 하나님의 나라’를 설교하셨던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 모순에 빠지는 것이고,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라”라고 말씀하시면 로마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정치범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데나리온에 있는 형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가이사의 것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카운터펀치를 날리십니다. “가이사의 것이라고 대답했니? 네 생각에 이것이 가이사의 것이라고 여겨지면 가이사에게 바치고, 만일 네 생각에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것이라고 여겨지면 하나님께 바쳐라.” 예수님의 논리에 1번 타자였던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이 논쟁에서 패배하여 Out되었습니다.  

2번 타자는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두개인들입니다. 그들의 신학적인 논쟁의 이슈는 ‘부활’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고엘제도’를 들어서 부활에 관한 질문을 합니다. “만일 칠형제가 있는데 큰 형님이 결혼 후 자녀 없이 죽어서 그 형수를 둘째가 취하고, 둘째도 자녀 없이 죽어서 그 형수를 셋째가 취하고…마지막 일곱째가 그 형수를 취하였다면 부활 후에 그 형수는 어느 사람의 아내가 되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부활 때에는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는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2번 타자 사두개인들도 아웃(Out)!

사두개인들도 신학논쟁에서 꼼짝없이 예수님께 패배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바리새인들이 이번에는 신학과 율법을 연구하는 율법사를 예수님께 보냅니다. 율법사는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큽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율법은 613개나 있습니다. 이 중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한 가지를 고른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한 가지가 중요하다고 하면, 나머지 612개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계명이라고 말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도 그와 같으니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라는 표현은 첫 번째 계명과 두 번째 계명이 똑같은 하나의 계명으로 연결되는 연결고리와도 같습니다. 예수님의 이 답변을 들은 율법사는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3번 타자 바리새인의 율법사도 Out!

 

△그들을 KO패 시키신 예수님의 신학(마 22:41-46)

이제는 예수님의 공격차례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그리스도는 누구의 자손이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득달같이 대답합니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요!”라고 말입니다. 이 대답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틀렸다!”였습니다. 그 근거로 다윗이 지은 시편 110:1(“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을 제시하십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이라면 다윗은 왜 자신의 후손에게 “주님”이라고 불렀겠는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신학자들은 예수님의 신학에 완전히 KO패 당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예수님께서는 7번의 저주심판 발언(마23:13-36)을 하십니다. 마치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심판주께서 일곱인을 떼시며 심판하시는 장면을 미리 보는 듯 합니다. 

이렇게 화요 신학논쟁은 예수님의 완승으로 끝이 납니다. 다음 시간에는 그 신학논쟁이 끝난 후 제자들을 데리고 감람산에 오르셔서 하셨던 감람산강론과 목요일에 이어지는 다락방강론, 그리고 포도나무 강론에 이어서 대제사장적인 기도 후 체포되시고,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시는 현장으로 함께 가 보겠습니다.  

 

10/26/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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