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와서 저녁식사를 막 마치자마자 트라우마 레벨 1 최응급 환자에 대한 문자가 쏟아지더니 응급센터에서 채플린 호출 전화가 왔다. 총상 환자이고 도착하자마자 CPR(심폐소생술)을 시작한다고 했다. 환자는 출혈을 워낙 많이 해서 결국 사망했지만, 가족 친척들이 연락을 받고 계속 모이고 그 와중에 서로 원망하고 싸우는 일은 이제 아예 익숙해져가고 있다. 의사도 간호사도 경비도 심지어 사건 담당 경찰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이제는 온전히 채플린이 감당하고 수습해야하는 상황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가족들을 위로하고 기도해준다. 마음의 상처로 인해 한 자리에 있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마침내 채플에 다 모여서 마음속에 쌓여있던 섭섭하고 풀지 못했던 응어리들을 다 토해내고 서로 용서하며 치유되는 시간을 통해 평온을 되찾는다. 마침내 CSI의 감식 조사도 마무리되고 가족들과 사망한 환자에 대한 모든 조사가 끝나면 고인과 유족들에 대한 예의로 주차장까지 직계 유족들을 배웅하며 떠나보낸다. 그러다 보면 초저녁에 실려 온 환자가 유족들이 떠날 때면 훌쩍 자정이 넘기 일쑤다.
최근 들어서 모든 병원에 총기 사고로 인한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 텍사스 지역 내에서만도 벌써 세 번째 집단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고 전국적으로 보도되지 않는 개별적인 총기 사상자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확산되고 있다. 남부 바이블벨트의 메가처치 미국교회에서 개인별로 총기를 보유하고 있는 신자들을 조사했더니 무려 절반 가까이 집이나 자동차에 휴대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들은 적도 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믿기 때문에 가족과 자신을 무법자들로부터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는 총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믿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들도 총기 사용법을 배워서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해서 놀랐던 적도 있다. 요즘은 채플린이 마치 한국영화 ‘신과 함께’에 등장하는 저승사자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죽음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또 죽음이 선포된 후 그들을 위해 이승에서 기도해주고 저승으로 떠나보내기 때문이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떠나겠구나 생각하면서 매일 죽는 연습과 상상을 한다.
한국에서는 자원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죽음 체험 학습을 시키는 병원과 호스피스 단체들이 있다고 들었다. 미국에서는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계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병원들이 많다. 1주간의 기본 훈련을 받은 후 주로 응급실과 중환자실 같은 환경에서 스태프들을 도우며 환자들을 돌보며 치료하는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교실 강의가 아닌 생생한 현장에서 질병과 죽음과 싸우는 환자들과 스태프들을 통해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귀한 교훈과 경험을 얻게 된다. 가족들과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들도 있다. 학생들이 교통사고나 총기 사고 등의 피해자로 분장하고 누군가가 신고를 하면, 구조 헬기나 소방서 앰뷸런스가 와서 환자를 실고 병원에 도착해서 트라우마 팀이 마치 진짜 응급 사건 환자가 들어온 것처럼 모든 조치를 취하다가 환자가 사망했다고 선언한다. 그 때 대기하고 있던 진짜 부모나 형제자매들이 사망한 것으로 취급된 환자를 병실에 와서 보고 의사의 보고를 듣고 채플린의 위로와 기도를 받게 한다.
대부분의 가족들이 마치 진짜로 자기 자식이나 형제가 사망한 것처럼 감정적인 고통과 슬픔을 경험하게 된다. 환자 자신도 자신이 마치 죽음을 경험하며 자신을 위해 애도하는 가족들의 음성을 듣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을 미리 지정된 학생들로 하여금 비디오로 촬영 녹화하게 해서 다음 날 전교생이 강당에서 다 같이 감상하며 다시금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시간을 갖고 학생들로 하여금 느낌을 나누고 배우고 깨달은 교훈들을 적어보게 한다. 수많은 학교들이 지역의 종합병원과 함께 일년에 한 번씩 이런 프로그램을 하면서 총기 사고의 예방과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을 갖도록 해준다. 한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되면 자신과 남을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며 긍정적이고 건강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의 출발도 한 영혼의 소중함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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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