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고 올라가기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너 죽고 나 살자” 이 세상의 모든 구조가 그렇지 않은가. 이 세상은 누군가를 밟아야 내가 올라갈 수 있는 구조이다. 모든 영역이 다 그렇다. 입시도 그렇고 취업도 그러며 경제도 그러하며 정치도 그렇다. 그런 구조를 눈앞에서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이 노래를 비롯하여 여러 장르에서 시행하고 있는 오디션(audition) 프로그램이다. 오디션에서 누군가를 제치지 않고 어떻게 다음 단계에 오를 수 있겠으며 정상에 이를 수 있겠는가. 나는 그런 치열한 경쟁의 어느 오래 전 프로그램에서 한 심사위원이 이렇게 말한 것을 기억한다.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가지 마시고 안고 올라가세요.” 나는 그 말을 하신 분의 진심을 믿는다. 그런데 도대체 다른 사람을 안고 어떻게 올라가라는 말인가. 

 

그러나 그런 길이 있다. “흉년에 땅을 사지 않는다. 파장 때 물건을 사지 않는다. 재산은 만 석 이상 모으지 말라. 과거를 보되 진사(進士) 이상은 하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조선시대 최고의 부자였던 경주 최 부잣집의 삶의 방식이 바로 그런 길이다. 그 당시 부잣집을 털던 활빈당(活貧黨)도 최 부잣집은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오늘날 공직에 있으면서 부동산에 관한 고급 정보를 미리 알아 국민들이야 어찌 되든 땅을 사고 집을 사서 투기(投機)를 일삼는 현실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최 부잣집 삶의 철학이 심금(心琴)을 울린다. 다른 사람을 발로 밟고 걷어차서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끌어안으면서도 잘 사는 길이 분명히 있다.

 

“여러분 우리는 고릴라를 만나기 위해 아프리카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에 가면 링컨이라는 고릴라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링컨의 정적(政敵)이었던 에드윈 스탠턴이 링컨을 놀리면서 품어낸 독설(毒舌)이 아니었던가. 훗날 대통령이 된 링컨은 내각을 구성하면서 가장 중요한 국방부장관 자리에 바로 그 스탠턴을 임명했다. 링컨은 자기를 놀리던 정적이라고 걷어차고 승리를 노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따뜻이 안고 올라가 진정한 승리자가 되었다. 정치의 영역에도 정적조차 안고 올라가는 길이 분명히 있다. 

 

나는 어느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쟁쟁한 실력자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에게 감탄하면서 경쟁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등수(等數)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에게고 결코 중요하지 않았다. 나도 그렇지만 그 오디션을 유심히 보았던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그 과정 속에 서로 안아주던 모습 그리고 지금까지 그 모두가 때때로 홀로 또는 자주 어울려 잘 되는 광경을 보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각박(刻薄)한 경쟁사회라고 하지만 상대를 밀치지 않고 밟지 않고 안고 올라갈 길이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어떤 영역이든 그 정상의 자리에서 한 없이 머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외로운 정상, 쓸쓸한 내리막길이 눈앞에 분명한데 걷어차는 방식은 지혜롭지 못하다. 예수님은 저 하늘 자리는 내 자리야 하고 홀로 올라가신 것이 아니다. 우리를 그 자리에 함께 앉게 하신다. 안고 올라가기이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너 죽고 나 살자”의 세계관에 물들어 살 필요가 없다. 우리의 세계관은 주님 안에서 같이 윈(win)-윈(win) 하는 “너 살고 나 살자”이다.

06.05.2021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