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중의 한 단어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우리 모두는 살면서 여러 차례 아프기도 하고 원치 않았던 고통도 맞게 된다. 가장 극심한 고통은 언제 있으셨는가. 아직도 계속되는 고통 가운데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때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무엇인가? “힘들다”, “죽겠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있나?” 등등 절망과 원망의 단어들은 아니었는가? 터널 끝이 안 보이는 고통 중에도 “감사합니다”를 수없이 고백하신 분들도 많으시리라. 고통 중에 감사를 말하는 자는 아름답다. 다니엘은 역경 중에도 감사를 잊지 않았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인종차별의 고통을 온 몸으로 받아야 했다. 고통 가운데서 그가 굳게 붙잡은 한 단어는 무엇인가? 그의 유명한 연설에서 알 수 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어느 날 모든 계곡이 높이 솟아오르고, 모든 언덕과 산은 낮아지고, 거친 곳은 평평해지고, 굽은 곳은 곧게 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모든 사람이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는 꿈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고통 중에 꿈이란 한 단어를 붙잡았다. 그를 총으로 쏜 자가 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총으로 죽일 수 없었다. 그는 떠났어도 그의 꿈은 그 성취를 향해 오늘도 날아오르고 있다.

며칠 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노회 목사님이 있으셨다. 목사님은 5년 3개월 동안 폐암으로 투병하시면서도 교회 강단을 신실하게 지키셨다. 그 긴 고통의 시간에 간간이 뵈올 때면 그전에도 그러셨듯이 소년같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사랑과 믿음의 언어로 듣는 이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 주셨던 목사님이시다. 목사님이 하늘나라로 가시기 얼마 전 이런 글을 보내주셨다. “노회장님께, 기도해주시고 격려해주심 감사합니다. 마지막까지 하나님 영광위해 믿음의 싸움을 잘 싸우게 기도해 주세요. 제 몸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주님의 보혈과 긍휼히 여기심으로 나를 지키시고 영광 받으심을 기도합니다. 노회가 하나님 영광을 나타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에 지속적인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사랑합니다!!” 마지막 시간을 얼마 남지 않으셨을 때 목사님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셨다. 목사님의 눈은 세상에 대해 점점 잠겨갔어도 하나님 영광의 빛은 더욱 찬란하게 보이시는 것 같았다. 믿음이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한 목사님의 마지막 글이셨다. 고통 가운데 목사님의 가장 중요한 단어는 영광이었다. 하나님께 영광!

팬데믹의 고통 가운데 우리 자녀들도 함께 힘들어하고 있다. 그들에게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많은 자녀들이 “자유”라고 말할 것 같다. 수개월 동안 집에 갇혀 있다시피 하였고 여전히 교회나 학교에 출입에도 많은 제한과 제약을 받고 있다. 친구들과도 가까이 못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이 길어지면서 다음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미안함과 괴로움은 깊어간다. 우리들의 잘못으로 이런 오랜 고통을 저들에게 안겨주었다는 책임감이 더욱 저며 온다. 저들에게 절실한 단어는 자유이리라. 그 자유가 마스크, 거리 제한, 출입 제한으로부터의 자유에 그치지 않고 죄로부터의 자유라는 것이 더 본질적인 자유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고통 중에 한 단어는 매우 중요하다. 감사, 꿈, 영광, 자유 등 다 귀한 단어이다. 고통 중에 꼭 붙잡는 나의 단어는 무엇인가.

09.19.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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