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 입은 양복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양복감을 받아 드신 목사님은 너무 당황하셨다고 한다. 어려운 가운데 계신 권사님이 양복감을 선물로 주셔서 당황했고, 가만 열어보니 양복감의 재질은 대중적이지도 않았고 색상은 목사가 입을 수 없는 칼라였기 때문이었다. 목사님의 고민은 그 양복감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더 커졌다. 사모님과 함께 그 양복감을 펼쳐들고 이 이상한(?) 양복감으로 양복을 맞춰서는 한 번도 못 입을 것 같고 또 양복을 맞출 돈도 없으셨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이렇게 의논하셨다. 일단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여 양복을 맞추어 입고 양복감을 주신 권사님이 주일예배에 나오시면 이렇게 양복을 입게 되었다고 감사인사를 드리자고. 

몇 주의 시간이 흐른 다음 목사님은 그 당시 누구도 선택하지 않을 재질과 색상의 양복을 입고 주일날 교회에 나타나셨다. 그 주일, 목사님을 뵌 모든 성도들은 너무나 어색한 양복을 입으신 목사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목사님은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으셨고 양복감을 주신 권사님이 교회에 오셨을 때 환히 맞으시고 주신 양복감으로 이렇게 양복을 만들어 입게 되었다고 감사 드리셨다. 권사님은 자신이 준 양복감으로 멋진(?) 양복을 입으신 목사님을 뵙고 너무 기뻐하셨다. 

권사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큰돈을 드려 양복을 맞춰 입으신 목사님은 더 이상 그 양복을 입으실 수 없었다. 단 한 번 입기 위해, 권사님에게 실망이 드리지 않고 기쁨을 드리기 위해 양복을 지어 입으신 것이다. 그 권사님은 나의 어머니셨고, 그 목사님은 어머니가 다니시던 교회, 곧 나의 모교회의 그 당시 어머니 구역 담당 목사님이셨다. 

먼 훗날,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목사님이 웃으시면서 들려주신 이야기를 나는 입에는 웃음으로 마음에는 눈물로 그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는 언제부터 그리고 어떻게 그런 양복감을 갖고 계셨는지, 왜 목사님께 양복 맞추실 돈을 함께 주시지 않으시고 옷감만 주셨는지(물론 여유가 없으셨을 것이다), 여러 생각에 잠겼었다. 무엇보다 그런 어이없는 선택을 하신 목사님의 성도 사랑에 마음이 저몄다. 다시는 그 양복을 입으실 수 없음을 아시고도 목사 아들을 미국 보내고 홀로 사시던 권사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 어울리지 않는 양복을 비싸게 지어 입으신 목사님이 던져주신 큰 감동은 평생 지울 수가 없다.

사실, 나의 어머니도 어이없는 선택을 많이 하셨다. 아버님에게 있으신 것은 딸 다섯과 아들 하나, 없으신 것은 집과 돈이셨다. 아, 중요한 것 하나 있으셨는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특심하셨다. 어머니는 이런 가정에 오셔서 아버님의 아내가 되시기로, 나와 우리 누님들의 어머니가 되시기로 선택하셨다. 아들이 목회 길을 가는데 기도와 뒷바라지 하시기를 기쁘게 선택하셨다. 몸이 약하신 데도 아들을 위해 수차례 금식(어떨 때는 집에서 22일 동안 금식하시는 것을 보았다)을 선택하셨다. 훗날 천국에 올라가 어머니께 왜 그런 어이없는(?) 선택들을 즐겨 하셨냐고 여쭈어볼 참이다. 

어이없는 선택을 말하자면 단연코 우리 예수님이시다. 왜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기로 선택하셨는지, 왜 나 같은 자를 위해 십자가 위해서 죽음을 선택하셨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찬송을 들으면서 예수님의 선택을 깊이 묵상해 본다. 목사님의 선택과 어머니의 선택도 생각해 본다.

“사랑이 구주를 죽게 했네/왜 날 사랑하나/겸손히 십자가 지시었네/왜 날 사랑하나/왜 날 사랑하나/왜 날 사랑하나/왜 주님 갈보리 가야했나/왜 날 사랑하나.“

07.1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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