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데스 포인트(Death Point)"란 더 이상 살 수 없는 한계점을 의미한다. 생물들이 고온이거나 저온의 환경 때문에 더 이상 살 수 없고, 사람들이 체력이 고갈되어 호흡을 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는 지점을 “데스 포인트”라고 부른다. 축구경기에서는 후반 30분 즈음에, 42.195km를 달려야 하는 마라톤에서는 30km 정도에 “데스 포인트”가 찾아온다고 한다. 그 증상으로 모든 근육이 경직되고 가슴에는 통증이, 마음에는 공포감이 생긴다고 한다.
온 세상이 “데스 포인트” 공포로 떨고 있다. 지난 1월 23일 미국 핵과학자회(BAS)는 지구종말 시계를 공개하였다. 그 시계는 자정 100초 전(前)을 가리키고 있었다. 핵위협과 기후변화를 감안할 때 인류가 최후를 맞는 시점이 100초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류에게 “데스 포인트”가 코앞에 있는 정도가 아니라 지금이 바로 그 지점이라고 과학자들이 외치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우한폐렴이라 일컫는 신종 코로나 전염병은 사망자와 감염자를 기하급수(幾何級數)로 늘리면서 온 세계를 “데스 포인트”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데스 포인트”는 정녕 절망의 시간인가? 포기의 시간인가? 죽음의 시간인가? 아니다. 놀라운 이야기를 들어보라. 마라톤 선수들이 “데스 포인트”를 잘 극복하면 새로운 에너지가 생성되면서 마지막 골인지점까지 큰 어려움 없이 달릴 수 있다고 한다.
개인 앞에 다가 온 “데스 포인트”이든지, 인류에게 닥친 “데스 포인트”는 결코 절망의 시간이나 포기의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류시화 시인의 책 가운데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 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 제목이다. “데스 포인트”는 그 이름처럼 마침표로 여길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좌절할 수 있다. 그러나 “데스 포인트”를 마침표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역사의 마침표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 그 이전까지 우리가 느끼는 “데스 포인트”는 모두 쉼표로 삼아야 한다. 묵상의 쉼표, 회복의 쉼표, 회개의 쉼표, 각성의 쉼표로 삼아야 한다. “데스 포인트”는 죽을 것 같이 힘든 시간이긴 하지만 새로운 희망의 길로 나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바울에게도 죽을 것 같은 “데스 포인트” 지점이 있었다. 그 때 그는 어떻게 하였는가.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1:8-9). 바울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데스 포인트”에서 포기하지 아니하고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여 또 달렸던 것이다.
올해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막 넘었다. 지난 한 달 안에도 벌써 “데스 포인트”가 찾아왔고 또 올해의 마지막을 향해 달리다보면 “데스 포인트” 같은 지점이 몇 차례 더 다가올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이유가 너무 많이 존재하는 힘겨운 지점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어떤 “데스 포인트”도 두려워하지 말자. 하나님을 의지하면 그 지점이 오히려 영적 도약의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너무나 힘든 “데스 포인트”이라면 들어보라. 이 땅의 무수한 “데스 포인트”를 뛰어 넘어 마침내 천국에 이른 구름 같이 둘러싼 저 하늘의 허다한 증인들의 응원 소리를.
02.01.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