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상처에는 이야기가 있다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지난 월요일 아침 사람들이 속속 모여 들었다. 그들은 주일 사역 후 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뉴욕으로 달려왔는가. 제 71차 국제전도폭발 지도자 임상훈련 때문이었다. 초면(初面)이기도 하고 구면(舊面)이기도 한 스탭, 훈련자, 훈련생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훈련은 시작되었다. K 목사님. 미주 전도폭발훈련 사역에 대부(大父)와도 같으신 분이다. 은퇴 후에도 세계 곳곳에 다니시면서 복음을 위한 사역을 계속 하시는 가운데 이번 훈련에도 여러 강의를 맡으셨다. 그 날 오후 강의 중에 뒤로 쓰러지시면서 머리를 다치셨다. 누워 계신 뒷머리에서 피가 흘렀다. 의식은 있으셨으나 기억은 잠깐 잊으신 듯하였다. 911을 통해 앰뷸런스가 곧 도착하였고 병원으로 옮기셨다. 병원에서 여러 체크(check)를 하였지만 다른 이상은 없으셨고 기억은 다시 분명해지셨고 찢어진 뒷머리만 아물면 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날 밤늦게 퇴원하셨다. 아무리 아문다 하여도 상처(傷處)는 남을 것 같다. 그 상처는 이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주님의 날에 주님께서 K 목사님의 상처를 어루만지시면서 무엇이라 말씀하실까? “착하고 충성된 종아, 얼마나 아팠니....” 그러지 않으실까. 그 날 저녁 전도대상자들을 향해 나가는 모든 훈련자들과 훈련생들은 복음 전파의 시급성을 절절히 느끼며 나갔다. 

상처 없는 자가 누구 있겠는가. 누구나 어딘가에 상처가 있다. 몸에도 마음에도 아픔의 상처들이 여럿 있다. 상처가 날 때 반드시 비명만이 나는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김재진 시인은 풀은 상처가 날 때 비명대신 향기를 낸다고 한다. “베어진 풀에서 향기가 난다. 알고 보면 향기는 풀의 상처다. 베이는 순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지만 비명 대신 풀들은 향기를 지른다. 들판을 물들이는 초록의 상처 상처가 내뿜는 향기에 취해 나는 아픈 것도 잊는다. 상처도 저토록 아름다운 것이 있다” 그날 밤, K 목사님을 병원으로 찾아뵈었을 때 침대시트에는 여전히 피가 묻혀 있었는데 하나님께는 감사를, 우리에게는 미안함을 토로(吐露)하셨다. 병상(病床)에 둘러 있던 사람들은 상처를 가진 자로부터 비명(悲鳴)을 듣지 않고 향기(香氣)를 맡았다. 복음 때문에 갖게 된 아름다운 상처의 향기를.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바울에게는 얼마나 상처가 많았겠는가. 그 상처마다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으리라. 바울은 자기의 상처에 이름을 붙였다. “예수의 흔적(痕迹)”이라고. 자기의 상처를 예수님의 이야기로 보았다. 예수님의 관점으로 해석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에게 고통과 아픔을 준 사람들을 어찌 용서할 수 있었겠는가. 바울은 상처를 흔적이라 말했고 마침내 목 베이는 마지막 고통도 순교의 이야기로 승화(昇華) 시켰다. 

상처는 외부로부터만 오는 것이 아니다. 자해(自害)도 있다. 화가(畵家) 반 고흐가 그랬다. 스스로 자기 귀를 면도칼로 잘랐다. 그리고 귀에 붕대를 감은 자기의 모습을 자화상(自畵像)으로 그렸다. 그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붕대로 감아 보이지 않는 귀의 상처에서 잘 보이지 않는 슬픈 이야기가 들린다. 훗날 그는 총(銃)으로 자기의 가슴에 귀보다 더 큰 상처를 남기고 비틀거리다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고흐의 그림들은 다분히 영적인데도 자기의 아픈 상처를 끝내 극복 못한 신음(呻吟)과도 같다. 

모든 사람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모든 상처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놀랍게도 모든 상처 이야기는 신음으로 들리기도 하고 환희(歡喜)로 들리기도 한다. 

 

09/27/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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