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2014년 6월 10일 화요일 일기장은 길고 길었다. 그 긴 일기 중에 분명하게 남아있는 구절이 있다. “vision을 담은 건물을 지으라” 다민족과 다음세대를 위한 새로운 성전건축 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새벽기도시간에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곧 당회와 중직자 모임을 열어 “vision을 담은 건물을 지으라”는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나누었다. 건축위원회가 결성되었고 길고 긴 시간이 흘렀다.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2019년 9월 21일 토요일 새성전 착공-완공이 아니다-감사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아닌 다른 동기(動機)로 시작되었다면 벌써 포기했을 일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시나? 일을 시작하면 반드시 끝을 보신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우리도 우리 주님이 일하시는 스타일을 닮기 원한다면 시작한 일에 끝을 꼭 보아야 한다. 스룹바벨이 그랬다.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시작 일을 잘 마치시는 멋진 사람이신가, 아니면 하다말고를 반복하시는 슬픈 인생이신가. 다른 것을 몰라도 나는 끝을 잘 못 마치는 것이 있다. 유독(惟獨) 나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운동이 그렇다. 작심(作心)하고 끊었던 두 달 짜리 피트니스(fitness) 회원권이 지갑에서 울고 있다. 곰곰이 분석해 보았다. 시작한 운동을 왜 번번이 끝을 못 내는지. 그 분석 결과는 이렇다. 운동은 나의 우선순위에서 한참 멀리 있기 때문이다. 운동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자그마한 핑계거리가 있으면 항상 먼저 신나게(?) 제쳐 놓는 것이 운동이다. 건처사우재(建妻事友財) 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건강이 있어야 아내도, 사업도, 우정도, 재물도 의미가 있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하다말다의 반복하는 운동의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할 것이니 다시 운동복을 챙겨 보려고 한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시작한 성전건축을 마치려는데 큰 산이 스룹바벨 앞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큰 산을 평지로 만들었다. 그는 문제를 크게 보지 않았고 하나님을 크게 보았다. 예수님도 그러하셨다. 십자가를 크게 본 것이 아니라 그 뒤의 영광을 크게 보셨다. 그래서 시작하신 일을 다 이루실 수 있었다. 한국에서 어렸을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말이 있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었다. 1차, 2차, 3차 계속 되었던 것을 보아 어려움 가운데 그 계획의 시작과 끝이 잘 이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 아픔과 아쉬움도 있었지만 국민들을 잘살게 해주려는 큰 가치를 향한 정책의 일관성은 있었다. 요즈음의 정책은 어떠한가.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일관된 정책을 찾기 어렵다. 여론이란 장애물, 정파의 이해관계라는 장애물,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의 장애물 등으로 시작한 일을 끝내지 못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미국은 우리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요 교회와 학교와 병원 등을 아낌없이 지어준 나라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고아들을 기쁘게 받아준 나라다. 우리나라의 독립, 전쟁, 민주화, 경제개발 등 모든 영역에 함께한 선한 친구요 끝까지 같이 가야할 동맹이다. 이런 관계가 이런저런 이유로 희미해져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를 우선순위에서 제쳐놓거나, 동행의 큰 그림을 놓쳐서는 안 된다.
개인의 일이나 가정의 일, 나라의 일이나 외교의 일, 물론 교회의 일도 흐지부지 하면 안 된다. “그 일을 마치리라”는 말이 이제는 강력한 삶과 온전한 인격으로 맺혀야 한다.
09.21.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