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祖國)에 법의 정신(精神)은 어디로?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얼마 전 원로목사님을 찾아뵈었다. 누워 계셨지만 따듯하게 “김성국 목사”라고 부르시더니 단호(斷乎)하게 말씀을 하셨다. "공산당과 싸워야해!" 그리고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셨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힘드신 가운데 조국(祖國)에 대한 염려와 고향(故鄕)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차 계신 모습을 보았다. 어떻게 세워진 대한민국인가. 어떻게 갖게 되고 어떻게 지켜온 자유민주주의인가. 자유민주주의 나라 우리 대한민국에 공산주의가 넘실댐은 무엇이며 사회주의가 끼어듦은 웬 말인가. 우리 모두도 바쁜 이민자로 살아가지만 떠나온 나라에 대한 걱정과 기도가 떠나지 않고 그리움이 가시지 않는다. 특별히 최근에 자유민주주의의 법의 정신(精神)이 크게 훼손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모든 존재(存在)에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법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 법이 어디서 온지도 모르면서 자연법이라 부른다. 사람은 자연법의 영향 아래 있으면서 사회법을 만들어 갔다. 이 또한 하나님이 기안자(起案者)이신데 법의 기원과 원리를 알지 못하고 자기들 멋대로 법을 만들어 사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법은 공산주의처럼 하나님을 배도(背道)하거나 사회주의처럼 인간을 황폐(荒廢)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종교의 자유를 둠으로서 방해 없이 하나님에게 나아가게 하는 기능(機能)이 있고 인간을 이념과 물질의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규정이 있다. 더 나아가 자유민주주의의 법은 그 법의 외적인 모습인 합법성(合法性)만 지키면 된다고 가르치지 않고 그 법의 내적인 모습인 도덕성(道德性)을 동일하게 요청한다. 법을 지키는데 합법성만 있으면 된다고 하는 자들은 반드시 위선의 길로 가고 마침내 편법과 탈법의 사람이 된다. 누구나 그래서는 안 되지만 권력을 가진 자들은 그 영향력을 생각해 볼 때 더더욱 조심할 일이다. 권력을 가진 자가 상대적으로 약한 자 사이에서 법의 일탈(逸脫)을 일삼으면 그 공동체의 평화는 사라지고 탄식이 깊어지는 것은 자명(自明)한 일이 아니겠는가. 다른 한편 공동체 전체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권력도 함께 가지면 안 된다. 지도자가 자기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를 부정(否定)한다면 갈등과 충돌은 물론이요 나아가 양쪽 다 버거운 투쟁(鬪爭)이 전개될 수도 있다. 

이런 저런 면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君主論)을 다 동의할 수는 없어도 그가 오래 전에 말한 "군주는 어느 말 한 마디도 진실하고 성실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는 말은 오늘 날도 매우 적실(適實)하고 우리의 조국(祖國)에 더더욱 그러하다. 우리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그 법에 담고 있다. 그 가치가 더 공고(鞏固)해지고 발전될지언정 훼손이나 다른 것으로의 대치(代置)는 있을 수 없다. 칼럼 제목에서의 물음을 다시 묻고 싶다. “조국(祖國)에 법의 정신(精神)은 어디로?” 그 질문은 나에게도 필요하다. 목회에 합법성만 내세우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잃고 또 그 합법성이라는 것조차 슬금슬금 갉아먹다가 위선(僞善)과 일탈(逸脫)의 길로 들어서서야 되겠는가.

가을바람이 분다. 나도 지금까지 그 방향을 지향해왔지만 원로목사님의 말씀을 더욱 예사롭게 여기지 않을 터이다. 목사님이 고향과 본향을 생각하며 부르신 노래를 가벼운 노래로 여기지 않을 터이다. 

09.1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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