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아모레 화장품이요~~” 골목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화장품 판매 아저씨의 구성진 목소리. 점점 그 소리가 우리 집에 다가올수록 내 마음은 복잡해졌다. 그 아저씨는 반드시 우리 집을 들른다. 그리고 어머니께 외상값을 달라고 한다. 자주 있던 일이었지만 어머니가 외상값을 치루지 못하실 때면 옆방에 있던 나의 마음도 부끄러움에 꽁닥였다. 그래도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그 화장품을 아침저녁으로 바르시는 것을 보면 내 마음에도 화장품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화장품은 여성들의 전유물로 생각했다. 다섯이나 되는 누님들도 화장품을 서로 돌아가며 발랐지만(화장품 대신 오이를 썰어 얼굴에 붙이는 것도 가끔 보았다) 내게 바르라고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화장품을 사용하지 않는 남성들을 찾기 쉽지 않다. 나도 물론 사용한다. 남성 전용 화장품을 사용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아내 화장품을 슬쩍 바르곤 한다.
화장과 관련된 성경에서의 인상적인 장면은 에스더서에서 보았다. 아하수에로 왕의 아내를 뽑기 과정에 후보 처녀들을 온갖 화장품으로 가꾼 장면이다. “처녀마다 차례대로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기 전에 여자에 대하여 정한 규례대로 열두 달 동안을 행하되 여섯 달은 몰약에 기름을 쓰고 여섯 달은 여자에게 쓰는 다른 물품을 써서 몸을 정결하게 하는 기한을 마치며” 왕에게 아무렇게나 하고 나갈 수는 없었다. 에스더도 오랫동안 곱게 화장하고 나아가 왕의 사랑을 받게 되었고 마침내 왕후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왕이요 신랑이신 예수님께 나아가는 아무렇게나 하고 나가면 되는가. 아니다. 화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마음의 화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보시는 것이 마음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루라도 얼굴을 가꾸지 않으면 하루마다 탄력을 잃어가듯이, 정원도 방치하면 곧 더러워지듯이, 마음도 가꾸지 않으면 금방 황폐해진다. 그런 황폐함을 가지고 우리 왕에게, 나의 신랑에게 나갈 수 없다. 여기 그 마음의 화장품이 있다. 이것들을 바르고 또 발라야 한다. 그 화장품은 우리들의 원형이었던 신의 성품으로 가꾸어 예수님 앞에 넉넉히 나아가게 한다. 무엇일까?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라---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감출 수 없는 것들이 몇 있다. 기침, 가난, 사랑이다. 그리고 또 있다. 향수이다. 향수도 감출 수 없지만 아쉽게도 오래가지 않는다. 얼굴의 화장품에는 향긋한 냄새가 나지만 자기 코앞에서 이내 사라진다. 마음의 화장품 냄새는 다르다. 거기에는 향기로운 냄새가 있다. 어디론가 쉽게 달아나는 향긋한 냄새와 달리 향기로운 냄새는 나에게 오래 남고 남에게까지 멀리 번진다. 물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문득 그 아저씨의 소리가 그립다. “아모레 화장품이요~~”(지금 칼럼 속에서 은근히 협찬광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가 즐겨 바르시던 그 화장품, 그 냄새가 그립다. 그러나 어머니의 진짜 냄새는 얼굴의 향긋한 냄새가 아니었고 마음의 향기였다. 가을이 저기 다가오는데 어머니의 향기가 몹시 그립다.
08.24.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