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목회자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지난 월요일 신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학장으로서 훈시(訓示)가 필요했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생각하다가 개혁주의 신학교이니까 졸업생들에게 “개혁주의 목회자가 되라”고 훈시했다. 개혁주의는 선진들에게서 배운 것이요 스스로에게 강조하는 것이요 후학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개혁주의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개혁주의 목회자는 하나님의 주권을 한없이 높이고 그 영광을 크게 찬양한다. 개혁주의 목회자의 관심은 큰 교회, 사례, 명성과 칭찬이 아니다. 그 우선순위가 내 구원의 문제도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주권이 높아진다면 나는 어찌되어도 좋다는 하나님 중심 사상을 갖고 있다. 사람의 이름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가. 사람에의 관심이 더욱 깊어지고 있는가. 그것은 개혁주의 목회자가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개혁주의 목회자는 하나님의 창조주이심과 인간은 피조 됨을 한시라도 잊지 않으면서, 기도에서 사역에서 삶에서 부르신 이를 원망하거나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참견(參見)하지 않는다. “네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 개혁주의 목회자의 답은 간단명료(簡單明瞭)하며 영원히 유효(有效)하다. 그렇다. 하나님의 주권 앞에 “옳습니다”라는 고백 외에는 철저히 입을 다물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讚美)하는 일에는 입을 크게 여는 자가 개혁주의 목회자이다. 

개혁주의 목회자는 말씀의 권위 앞에 엎드리는 사람이다. 종교개혁의 가장 큰 공헌은 무엇인가?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되찾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공헌이 이내 무너지기 시작하여 하나님은 지금도 내게 직접 계시한다고 하면서 성경을 내팽개친 자들도 있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도 포함하였다고 하면서 성경을 여러 자료나 이야기 중의 하나로 전락시킨 사람들도 있다. 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는 자들도 있다. 성경을 설교하려는 목적 외에는 열지 않는 자도 있다. 교회를 섬긴다하면서 말씀이 아닌 경험이나 이성, 상황이나 유행, 사조(思潮)나 사상을 따르는 자들도 있다. 이런 태도들은 결코 개혁주의 목회자들의 모습은 아니다. 성경 앞에서 “이 말씀은 무오한 하나님의 진리 말씀이니이다”라고 외치면서 그 말씀을 신학과 신앙과 목회 유일한 규범으로 삼는 것이 개혁주의 목회자이다.

개혁주의 목회자는 복음의 전체성을 주장한다. 개혁주의 목회자는 복음이 사람들의 삶에 부분적으로만 유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복음을 “나만 예수 믿고 천국가면 되는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개혁주의 목회자는 복음이 사람의 감정에만 머물러 있는 것처럼 자기의 감정에 충실(?)한 찬양만을 부르게 인도하거나, 복음이 이 땅이 번영을 위한 것처럼 설교하지 않는다. 개혁주의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세상을 버리고 예배당 안에만 머물러 있으라고 나약함과 비겁함을 가르치지 않는다. 개혁주의 목회자는 모든 것을 포괄하고 모든 것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 주는 온전하고도 힘찬 세계관을 갖고 있다. 노동, 정치, 사회, 교육, 예술, 과학, 윤리 등 제 분야에 열린 마음과 도전적인 정신을 갖지 못한 목회자는 더 이상 개혁주의 목회지가 아니다. 

개혁주의 목회자는 개혁주의가 다른 것과 견줄 수 없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헛된 오만에 빠져 있지도 않다. 개혁주의 목회자는 끝날 까지 작은 일에 충성하고 큰일을 도모(圖謀)함이 마땅하다. 목회를 끝내고 반드시 만날 분이 있지 않은가.

 

06.08.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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