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革新)을 위한 토양(土壤)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지난 1월 26일 본 신문사 사장 이•취임예배가 있었다. 그 날 취임사에서 사장직(社長職) 수락(受諾)의 이유(理由), 또 그 사명으로 기록(記錄), 참여(參與), 그리고 혁신(革新)을 언급하였다. 혁신을 외면(外面)한다면 시대를 선도(先導)할 언론의 기능에 부합(符合)치 않기에 그것을 중요시하였던 것이다. 기독 언론에 필요한 것은 혁신정신(革新精神)이다. 아니 모든 분야에 절실(切實)한 것이 혁신이다. 혁신에는 실패(失敗)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挑戰), 반대(反對)를 힘겨워하지 않는 용기(勇氣), 전통(傳統)을 무시하지 않는 자유(自由), 다양(多樣)함에 휘둘리지 않는 방향(方向)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혁신은 그 기대하는 열매에 걸 맞는 토양이 있어야 한다.

토양은 식물이 자라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役割)을 한다. 식물은 그곳에 담겨진 자양분(滋養分)을 흡수하며 자라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토양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셨다. 옥토(沃土)가 있는가하면 길가, 가시 밭, 자갈밭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같은 씨앗이라도 토양에 따라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다고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 말씀으로 토양을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하자면 성숙토(成熟土)와 미성숙토(未成熟土)가 있다. 땅의 크기가 아닌 그 땅의 토양이 중요하다. 성숙토에서는 무엇이든지 자라겠지만 미성숙토에서는 그 무엇이 자라겠는가. 소비자(消費者)에게 보다 안전과 편리함을 주는 우버(Uber) 택시가 어느 토양에서는 쑥쑥 잘 성장하고 또 다른 토양에서는 발도 못 붙인다. 

세계 최대의 혁신 장소(場所) 두 곳을 꼽으라면 미서부(美西部) 지역의 실리콘 밸리(Silicon Valley)와 이스라엘의 텔아비브(Tel Aviv)이다. 전자(前者)의 토양은 거대한 자본(資本)과 다양한 사고(思考)이고 후자(後者)의 토양은 집약(集約)된 기술(技術)과 장구(長久)한 역사(歷史)라 할 수 있다. 둘 다 나름 의미 있는 토양을 가지고 있다. 이들 혁신 도시에서 생성(生成)되고 있는 열매들이 현시대의 삶을 경이롭게 만들고 미래를 쉽게 예측(豫測) 못하게 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어떤 토양이 있는가. 우리가 가야할 혁신은 어느 토양에 심겨져 있는가. 그 토양 위에 이 시대에 기여(寄與)할 영적 혁신은 과연 가능한가. 영적 혁신의 토양은 다름 아닌 신뢰(信賴)이다. 혁신을 외치는 사람이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라면, 혁신의 길은 요원(遼遠)하다. 혁신의 또 다른 토양은 배움이다. 거대한 자본도 없고 장구한 역사가 없어도 겸비(謙卑)한 배움이 있다면 그 부족을 상당히 상쇄(相殺) 할 수 있다. 혁신의 토양으로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풍성한 관계는 풍성한 열매를 기대케 하는 토양이다. 혁신의 토양에는 또 다른 것이 필요한데 그것은 시스템의 변화이다.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는 그 어떤 혁신도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갈 시스템의 큰 변화가 있었다. 곧 모세 일인(一人) 지도자 체제에서 오십부장 백부장 천부장 등 집단(集團) 지도자 체제로 바꾸었다. 시스템을 바꾸고 보니 그들의 광야는 더 이상 광야가 아니라 오늘의 첨단(尖端) 도시가 부럽지 않은 자리였다. 이런 토양들 위에 혁신의 아이콘이 보일 것이고, 그 아이콘을 클릭하면 무한(無限)한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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