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하 목사 (예수사랑교회 담임)

행복한 목회...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담임24년 신뢰 바탕

“1970년대 서울서 부산을 관통하는 420킬로미터 고속도로를 불과 2년반 만에 놓았습니다. 미국 같으면 10년은 걸렸을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개통하고 난 후 보수공사를 곳곳에서 해야만 했지요. 그렇지만 일단 그 고속도로를 통해 한국은 빠른 시일 내에 발전하게 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7, 80년대 한국 교회가 급성장했습니다. 일제 치하에 1%에 불과했던 기독교인이 현재 20-2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런 급성장은 당연히 부작용을 낳게 됩니다. 그러나 일단 한국 교회가 부흥한 것만은 틀림없고 그로인해 현재 미국 다음으로 전 세계에 선교사파송 2위국이 됐습니다. 현재 한국 교회에 나타나고 있는 부조리한 일들은 그런 맥락에서 보고 싶습니다. 차근차근 성장하는 교회도 많이 있고 지엽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개척

서울시 노원구에 있는 예수사랑교회 담임 김진하 목사가 집회차 뉴욕을 방문했다. 뉴욕에는 자주 못 온다며 해외집회 자체를 잘 다니지 않고 교회 지키기(?)를 하는 편이라고. 24년전 개척한 예수사랑교회를 오늘까지 시무하고 있는 김진하 목사는 1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청년시절 기도원에서 3년간 생활하기도 했던 김 목사는 군대 훈련소에서 우연히 설교한 것이 계기가 돼 군종이 됐고 제대 후에 총회신학교에 입학했다. 가진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교회개척의 열망이 있었다. 그러나 전도사 시절 담임목사님의 소개로 성가대원이었던 사모를 만나 결혼한 후 성내동에 개척한 첫 교회는 4년 만에 문을 닫게 된다. 아틀란타에 형제 친지가 살고 있었는데 이민까지 생각했다고 김 목사는 회고했다.

장모님으로부터 5백만원을 빌려 개척한 교회가 예수사랑교회다. 부활절 첫 주 식구들과 10명이 예배를 드렸는데 둘째 주에 45명이 되고 한달 만에 100명이 됐다. 10년 후엔 교회건축의 꿈을 이뤘다. 김 목사는 “불같이 부어주셨다”고 표현했다. “목회하면서 느끼는 게 있는데 목회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입니다. 목회자 역량이나 실력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결정적인 역사죠. 어떤 경우 큰 교회 목사님들을 보면 설교도 별로인데... 하는 생각이 들죠. 그러나 설교가 부족하면 심방, 대인관계, 신뢰감 무엇인가 있기는 합니다.”

교회 소개

예수사랑교회는 일꾼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둔다. 평신도를 중심으로 한 문화사역이 강하다. 예배도 분위기도 문화요소를 가미한 현대적 예배형태로 전환했다. 과거 교회문화는 음악이 전부였지만 오늘날에는 찬양도 여러 형태로 활성화 됐다. 예배 시간에 교회 소식을 영상뉴스로 보여준다. 영상뉴스 제작도 평신도들이 다 하는데 해외선교도 100명 정도의 팀을 구성해 간다. 유치부부터 청장년까지 단기선교단을 구성한다. 6-7년 전부터 이런 형태의 해외선교를 하고 있으며, 군부대 방문도 일년에 4차례하고 있는데 결신자가 많이 나온다. 태권도 등 모든 것에 메시지가 담겨진 공연을 한다. 2005년 박경숙 선교사를 파송한 몽골선교는 울란바토르 주변에 현재 20여 예수사랑교회를 개척했다. 헌신된 현지인들을 한국 총신에서 공부시켜 다시 현지로 보낸다. 태국에도 음광민 김미영 선교사가 오래전 파송돼 태국 남부지역의 13교회를 돌보고 있으며 사이판 등 2, 30곳에 협력선교를 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턱없이 부족한 교육공간을 위해 교회 앞 주차장에 제2성전 건축을 계획하고 있다. 이미 조감도가 나와 있으며 2년 내에 완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목사는 시무 장로 23명의 당회와 교인들의 100% 지지를 받고 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인도하심과 아울러 큰 실수 없이 목회해온 담임목사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된 행복한 목회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교회 전망

예장합동 평양노회 소속인 김진하 목사는 총회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각 노회 세례교인들의 헌금이 정지됐고 40억원 상비부 예산이 정지된 상태다. 그래서 올 총회 선거법이 제비뽑기와 직접선거를 병행하는 방법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 교회 전망에 대해 김 목사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지만 결국은 질적 성장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 후 잿더미 속에서 희망이 없을 때 기도원을 찾아 기도하면서 70년 대부흥이 일어났습니다. 80년대에도 목회자들의 질적 수준 여부를 떠나 천막에 십자가만 걸면 부흥되는 급성장을 이뤘죠. 교회는 80년 중반부터 찬양, 90년대부터 말씀운동, 2천년 소그룹운동으로 전환됐습니다. 한편으로 현시점은 개척부흥 1세대 리더십의 교체시기입니다. 세대교체 단계에서 겪는 작은 부작용이라고 봅니다. 교인들도 무조건 봉사, 무조건 헌신했는데 이제는 계산적이고 개인주의적이고 실리적입니다. 또 세계적인 흐름도 중국 등 제3국으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수적성장은 확신할 수 없지만 내실화 단계를 거쳐 질적 성장을 이룰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진하 목사는 총신대와 신대원, 박사원을 졸업하고 페이스신학교(Th. M, D.R.E), 노스웨스트신학교(D. Min)를 졸업했으며 이금선 사모와의 사이에 남매가 있다.

<유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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