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터 뷰 :김옥란 선교사

남은 삶 하나님 생각에 걸맞도록 최선

김옥란 선교사 (KAPC세계선교회 /남가주든든한교회파송선교사)

[지난 7월18일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KAPC, 총회장 강기봉 목사) 세계선교회(회장 김경진 목사)에서 김옥란 사모가 평신도 선교사로 파송됐다. 2008년 12월 남편(고 김충일 목사)을 먼저 떠나보낸 후 실의에 잠겨있던 김옥란 사모는 믿음으로 고난의 시간을 견디며 말씀과 기도 가운데 새로운 소명을 깨닫게 되어 선교사로서 남은 생을 살며 남편의 다하지 못한 복음사역에 헌신키로 다짐했다. 김 선교사는 우선적으로 중남미쪽 치과 단기선교를 시작으로 추후 언어가 통하는 중남미나 북한쪽에 치과병원을 개원,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치유사역을 이어갈 계획이다. ]

“책임감을 느낍니다. 남은 제 삶이 하나님의 생각에 걸맞는 삶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선교사 파송식을 마친 소감을 짤막하게 답하는 김 선교사. 그의 짧은 문장 속에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헌신이 물씬 풍겼다.

아르헨티나에서 치과의사로 개인병원을 운영해 왔던 김 선교사가 남편을 따라 미국을 향한 것은 2001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남미에서 긴 세월을 살아온 탓에 미국은 낯설기만 했다고 회고한다. 미국에서는 치과의로서의 삶도 허락되지 않았고 언어와 문화의 벽도 만만치 않았다. 고 김충일 목사가 교회를 개척해 부흥의 가로를 달리던 터라 바쁜 남편에게 재이민의 고통을 터놓을 수도 없었지만 날로 부흥되는 교회를 함께 바라보며 기쁨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회개척 속에 기쁨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교회 이전을 앞두고 동분서주 주야로 고심하며 ‘성전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남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도 더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 김충일 목사의 기도는 헛되지 않았다. 2006년 현재 장소(1645 Beverly Bl)의 성전을 구입했다. 온 성도들과 함께 기뻐하며 호탕하게 웃던 남편의 모습은 지금도 김옥란 선교사의 가슴속에 잊혀지지 않는 모습으로 자리매김 돼 있다. 이제 김옥란 사모는 선교사로 거듭 났고 남편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종으로 세워졌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 같아요. 남편을 떠나보낸 후 정말 견디기 어려웠지요. 정말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절망 속에 있었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 속에 다시 찾아오셨고 아주 오래전부터 제 삶속에 함께 하신 주님을 다시 만나게 됐어요....” 조심스레 간증문을 내놓는 김 선교사는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일뿐이라고 거듭 강조하며 기도를 당부했다. 다음은 김 선교사의 간증 요약문이다.

<이성자 기자>

간 증 문

지난시절 힘들게 치과의사 과정을 공부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공부를 끝까지 다 마칠 수 있다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겠습니다”라고. 저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서는 공부를 다 마칠 수 있게 해주셨고 늦었지만 평신도 선교사로 의료사역을 감당하게 해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남미로 이주

◯…1965년 남미로 이주를 한 우리 동포들은 언어의 장벽으로 많은 사람들이 학업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다시 국민학교 1학년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한 달 후엔 2학년에 진급할 수 있었고 다음해엔 4학년에 편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2년 후에 졸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중학교였습니다. 중학교 1학년을 마친 후 여름 방학 동안에 공부하여 2학년 월반 시험을 무사히 치르고 3학년에 편입되어 공부를 했지만 4학년 때는 집에서 하는 일을 돕기 위해 1년을 쉬어야 했습니다. 저는 또다시 월반을 하려고 맘을 먹고 공부를 해서 몇 과목은 시험을 치렀지만 월반에 패스하기까진 두 과목이 남아있었을 때 어머니께서 병이 나셨습니다. 저는 병원을 다니며 통역을 해야 했습니다. 아직까지 2과목의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시험날짜와 어머니 수술날짜가 겹쳐 시험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잘되었고 3일 후에 학교를 갔지만 시험을 치루지 않았기 때문에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나 혼자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해주셨는데 이제 학교를 갈 수 없게 되었으니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봐...” 그때 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어느 날 그렇게 울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에 제가 천국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제 마음은 너무나 즐겁고 기뻤습니다. 아무도 없었지만 무섭지 않았습니다. 천국에서 들려오는 음악은 황홀 했으며 나에게 평안을 주었습니다. 언덕길 양옆으론 가로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꿈을 꾸다 깨어 난 저는 “아직도 좋으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날 버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바로 다시 잠이 들었는데 또 꿈을 꾸었습니다. 출발한 기차를 뛰어가서 제가 탈 수 있게 된 것이었지요. 그 꿈에서 깨어나 저는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한 후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학년 성적표를 갖고 학교를 가보아야겠다’ 라는....

그래서 그 다음날 학교를 갔더니 교장선생님께서 첫 말씀이 “널 많이 기다렸다”고 하시며 “왜 시험을 치러 안 왔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어머니의 수술 때문이라고 말씀 드리자 저를 위해 이틀 후에 시험을 치르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그동안 공부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그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두 과목을 저 혼자선 합격할 수 없으니 주님께서 도와주세요, 주님이 도와주시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기도와 함께 밤을 새워 공부했지만 시험을 치르려고 가서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전 길을 가며 기도했어요. “시험날짜를 바꾸어 달라”고.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역사시험 선생님이 늦게 오셔서 그동안 책을 읽고 있었는데 바로 시험에 그 문제들이 나왔습니다. 저는 합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기뻐서 소리를 지르며 울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해요. 주님 좋아 하시는 것 해드리고 싶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슬비가 내렸는데 주님께서 손으로 어루만져 주시는 것 같아 너무 좋아서 일부러 천천히 온몸이 흠뻑 젖게 걸었습니다.

미국으로 부르심

◯…이렇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느끼며 공부를 하며 대학교 졸업을 1년 앞두고 결혼하여 브라질로 남편을 따라 이주 하는 바람에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5년 후에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가 편입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에서도 힘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고 저 또한 그때마다 주님의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셔서 저는 어린 자녀들이 넷이나 되었지만 치과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졸업 후 치과의사로 일을 할 때도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기도하며 일을 하며 아르헨티나에서의 삶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국으로 다시 인도하셨습니다. 미국에서의 삶은 많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동안에 못했던 일들을 하게 하신다는 생각이 들어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평안을 찾았습니다. 2년 후에 살던 집을 팔고 나니 10만 불이 남았습니다. 경제적으로 아주 많이 힘든 때이었기에 그것이 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척교회를 하면서 수고한 보너스를 주신 것이라 생각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2008년 12월 하나님은 남편을 천국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때 저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남편과 기도한 것

◯…남편과 저는 함께 기도한 것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다 출가시키면 선교지에 가서 남편은 말씀과 주방장으로 섬기고 나는 치과 사역을 하자....’ 그런데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지 알 수가 없었고 모든 것이 다 헛것인 것 같은 절망감이 있었습니다. 누구를 믿고 살았는지 회의도 들었고 절망의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아르헨티나 방문 중에 어느 선교사님의 말씀이 저를 다시 깨우쳐 주셨습니다. “다른 분들과 합해서 돕겠으니 선교를 시작하라” 뿐만 아니라 미국에 계신 목사님들도 “더 늙기 전에 일을 하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용기를 냈습니다.

앞으로 평신도 선교사의 삶도 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음을 잘 압니다. 사역 속에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저를 위해 온 성도님들의 기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부족한 저를 위해 끊임없는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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