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목사 나성서부교회 / (310)749-0577 E-Mail: Lakwpc0316@yahoo.co.kr
Q: 고전15:29에서는 죽은 자를 위해 산 자가 세례 받는다는 말씀인데, 어떤 목사님은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 복음을 받지 못하고 죽었을 경우 산 사람이 기도하면 이미 죽은 사람도 구원받는다고 하며, 천주교에서는 이 말씀을 근거로 성 베드로 사원을 건축할 때 막대한 돈을 사죄권을 팔아서 충당하였다고 합니다. 목사님의 명쾌한 답변을 기대합니다.
-칼슨에서 김경태 장로 올림
A: 이 성경구절은 성경학자들도 의견이 분분해 성경의 난해구절 중에도 최고로 해석에 어려움을 던져주는 구절입니다. 신약주석가인 찰스 하지는 바울 당시에 죽은 자들을 위해 세례를 받는 자들이 있었는데 소위 이단인 게린투스 파(Cerinthian)와 마르시온 파(Marcionites)들에 의해 실행됐던 다양한 세례관습이 고린도에 이미 있었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단종파 사이에서는 세례예비자가 세례를 받기이전에 죽는 경우, 죽은 세례예비자가 그리스도인으로 등록되고 세례성례의 유익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위해 산사람이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대신 세례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해석의 반대자들은 세례의 속성과 효력에 대해 잘못된 견해에 근거한 미신적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의 주경신학자인 박윤선 박사는 그의 고린도전서주석에서 산사람이 죽은 사람을 위해 대신 세례받는 대리적(代理的)세례는 이단에 속하는 것이라며, 사도바울이 이것을 인정하는 듯이 관설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이단들의 미신적 관습을 예로 들면서 그들을 인정하지 않지만 부활이 없다면 왜 이단인 그들도 세례를 받으려고 하겠느냐는 부활의 확실성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닌가 보는 견해입니다.
또 한 가지 해석은 ‘죽은 사람을 위하여’란 헬라어 휘페르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위에서’(over)란 장소적인 개념과 ‘대신에’라는 대행적인 개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이 부활을 믿는 신앙을 표현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순교자의 무덤위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초대교부였던 크리소스톰(Chrysostom)의 기록에 의하면 이와 유사한 세례가 베풀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세례 받지 못하고 죽은 자가 있으면 죽은 자를 침상 같은 곳에 눕혀놓고 그 아래 산자가 들어가 눕습니다. 셋째, 칼빈과 다른 사람들은 여기의 죽은 자들이 의미하는 바는 곧 임종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라고 이해합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에게 무엇 때문에 세례를 시행해야 되겠는가? 저 역시 이것에 대한 바른 해석은 자신이 없습니다.
첫째가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미 죽은 자를 위해 다른 사람이 받는 세례는 비성경적이고 이단이며 전혀 효용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살아 있을 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해 본인이 받아야지 죽은 후에는 남이 대행해 줄 수 없으며 죽은 후에는 구원의 기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는 구원의 어떤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로마가톨릭이 성베드로 사원을 지을 때 돈이 부족해 퇴첼이라는 말 잘하는 수사학자를 동원해 사람들에게 “저 연옥에서 고통하는 부모님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이 헌금함에 동전을 넣어 땡그렁 하고 떨어지는 순간 연옥에 잇는 당신 부모형제들의 영혼이 천국으로 옮겨진다”고 연설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돈을 모으기 위하여 가톨릭이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