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어느 목사님이 은퇴하시고 인디안 선교를 하시는데 그 목사님은 미국의 청교도들과 미국 초기 정착민들이 아메리칸인디언들을 무참히 죽인 역사적인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하는 말씀을 얼핏 들었는데 좀 더 상세하게 알고 싶습니다.
-하버에서 이희은
A: 청교도들이 미국 신대륙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병들고 쇠약하여 상륙할 기력조차 없었습니다. 이때 이들을 발견한 왐파노아그(wampanoags) 인디언들은 작은 배로 메이플라워호까지 가서 낯선 백인들을 상륙시켰으며 플리머스 마을을 건설하는 데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백인들의 출현을 싫어한 인디언 부족도 있었지만 왐파노아그 인디언들은 그들의 공격에서 청교도들을 지켜주었고 옥수수 농사를 가르쳐준 것도 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의 초기 정착에 절대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하나님이 예비한 손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수확을 거두고 청교도들이 왐파노그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만찬을 베푼 것이 오늘까지 추수감사절 식탁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백인들의 감사는 별로 길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백인들은 그 후 2만명의 이민자가 몰려오게 되었고 땅이 협소하여 토지를 점점 확장해 나가고 부유한 나라를 만드는데 박차를 가했지만 정착지를 확장해 나가는 가운데 결국은 기존 왐파노아그 부족의 영역을 파고 들어가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정착민들은 왐파노아그 부족에게서 토지를 헐값에 사들이기 시작했고 왐파노아그 부족의 중심지 근처에 스완지타운이 건설될 때에는 주둔 영국군들의 무력을 동원한 협박까지 있었습니다. 정착민들은 왐파노아그 인디언 부족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정착민들은 정착지를 늘리기 위하여 인근 부족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1634년 네덜란드 정착민들이 공격당한 것을 빌미로 와핑거족 80여명은 변명도 못해보고 잠자는 도중에 다 학살당했습니다. 그 다음은 1636년 피쿼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피쿼드 부족은 왐파노아그 부족과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정착민들과 초기에는 좋은 관계였으나 정착민들의 확장에 점점 밀려 나가면서 대립이 시작되었고 정착민 살해를 빌미로 전투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초기 청교도의 생명의 은인이고 정착을 도와준 왐파노그 인디언 부족과 인디언들과 평화롭게 공존하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세월이 흘러 역사를 되돌아볼 때 아쉬움을 가지게 됩니다. 왐파노아그 부족은 61개 부족으로 집단을 이루었지만 후에 질병과 전쟁, 백인 개척자들과의 전쟁을 통해서 10만명이 죽고 결국은 5000명만 겨우 살아남았고 멸족하고, 분산되었다고 합니다.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이 미국에 찾아왔다면 자기들을 구해준 인디언들을 생명의 은인인줄 알고 감사하며 계속 좋은 관계를 맺어야 했지만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백인들의 욕심이 결국은 미국의 원주민 인디언들과 전쟁을 하여 수많은 인디언들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므로 미국인들은 원주민인 아메리칸인디언들을 죽인 역사적인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현재 남아있는 인디언들을 잘 돕고 보살펴야 할 책임이 있고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미국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인디언들에게 속죄하며 보답하는 차원에서 그 후손들에게 미국의 혜택을 받게 하고 복음을 전하고 적극적인 인디안 선교를 해야 합니다. 인디언 기독교 지도자들도 배출해야 합니다. 이것이 인디언들에게 은혜를 갚고 보답하는 길입니다.
12.12.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