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는 이스라엘 원주민들이 주로 살았고 이방 침략 많이 받아

이정현 목사

Q: 갈릴리도 북이스라엘인데 왜 사마리아 지역 결과와 같이 이방지역으로 안 되고 유다 지역 같이 유대인 지역이 되었는지요? 앗수르가 민족이동정책을 사마리아에서만 시행했나요? 바벨론 귀환포로가 갈릴리로도 갔나요?   

-LA 김 집사

 

A: 한국이 역사적으로 남과 북으로 갈라진 것처럼 이스라엘도 르호보암 왕 때 교만한 왕권을 무리하게 행사하려다가 북쪽 이스라엘 10지파와 남쪽 유다, 베냐민으로 나라가 둘로 갈라지는 분열왕국의 아픔과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분열왕국 후에도 왕들과 백성들이 죄의 악순환을 거듭하는 중에 앗수르왕 살만에셀 5세의 침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잊고 우상숭배와 도덕적 타락의 죄로 인해 북쪽 앗수르에 의해 결국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가 함락되고 주전 722년 호세아 왕 때에 나라가 망하게 된 것입니다. 1차와 2차로 포로로 끌려간 자들은 앗수르의 할라와 고산 하복과 메데 여러 지방에서 살았습니다. 

예레미야서를 보면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나중 유다백성들이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렘30:3, 렘33:7). 그리고 그들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북왕국 이스라엘의 포로들과 그 후예는 나중 남쪽 유다의 포로들과 바벨론에서 다시 만나게 된 줄 압니다. 파사왕 때 바벨론에서 포로로 귀환할 때에 돌아온 사람들 중에는 유다자손 외에 앗수르 시대에 끌려갔던 북이스라엘백성들과 그 후예들도 섞여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에스겔 37:19에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하나가 될 것을 예언합니다.

앗수르왕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사마리아인들이 조직적으로 반역하는 것을 막기 위해 27,290명의 북왕국 수도였던 사마리아의 지도급 인사와 백성들을 앗수르로 옮겼고 앗수르에 살던 이방민족을 사마리아로 옮겨 함께 결혼해 살도록 인종혼합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열왕기하 17장을 보면 사마리아로 온 새로운 이주자들이 그 땅의 사자(Lion)로 인해 뜻하지 않는 피해를 입자 그 지방 신을 제대로 섬기지 않은 때문이라고 믿어 여호와도 섬기고 또 그들이 섬겼던 각종 우상들도 함께 섬김으로 결국 사마리아는 혼합민족, 혼합종교의 2중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왕하17:29-41).

후에 사마리아로 돌아온 소위 정통 유대인들은 이 사마리아의 혼혈민족과 상종하지 않아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의 적대관계가 형성되는 불씨가 되었습니다. 갈릴리는 원래 그 뜻이 원형, 혹은 변방이라는 뜻의 갈릴(Galil)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이방의 갈릴리라고 불렸는데 갈릴리 지역이 이방의 나라들과 국경선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포로로 돌아온 사람들이 주로 예루살렘에 이주해 살았고 북서쪽에 위치한 갈릴리는 이스라엘 원주민들이 주로 살았고 이방에 침략을 많이 당하고 무시당하는 지역이었으나 예수님이 탄생한 후에 갈릴리에 빛이 비취었다고 말합니다(사9장). 왜냐하면 예수님이 공생애의 대부분의 전도사역이 주로 갈릴리에서 행하셨고 수많은 이적을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10/12/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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