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저희 교회는 교회를 이전하면서 담임 목사님이 “21세기 모라비안 성령 공동체”라는 새로운 교회의 비전을 주셨는데 웨슬레를 변화시켰다는 “모라비안 공동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로미타에서 권명옥
A: 좋은 질문입니다. 모라비안 공동체는 오늘날 지상 교회가 본 받아야 할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16세기 개신교 종교개혁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으로 카톨릭의 반 종교개혁운동(CounterReformation)이 일어났는데 그 후 종교개혁에 동조하는 세력은 무서운 핍박을 받았습니다. 나중에는 유럽에 30년 전쟁이라는 종교전쟁까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모라비안 형제단은 오늘날의 체코인 보헤미아에서 사상적으로 15세기 종교 개혁자인 존 후스의 개혁정신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모라비안 교회를 이해하려면 한사람 ‘존 후스’를 이해해야 합니다.
존 후스는 1373-1415년까지 짧게 생애를 살다가 간 분으로 당시 카톨릭 시대에 특별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후스는 독일의 마르틴 루터(1483-1546)보다 100여년 앞서 종교개혁의 불을 댕긴 15세기 종교 개혁자로서 첫째, 보헤미아(체코)인을 위해 라틴어가 아닌 체코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둘째, 모국어로 설교하면서 성경과 달리 ‘교황을 우상시’하고 면죄부를 판매한 부패한 가톨릭교회를 비판하였습니다. 셋째, 사제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제사장으로 직접 주님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고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아가고 성경만이 우리가 의지하고 믿어야 할 것이라고 평신도들에게 해방의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사제들의 전유물 같았던 성경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다고 증거했던 사람입니다. 오늘날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사실 그 당시에는 혁명 같은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카톨릭에 잡혀갔고 결국은 타오르는 불덩이 속으로 들어가 화형의 이슬로 이 땅을 떠났던 순교자였습니다.
이 존 후스의 개혁적인 신앙을 이어받은 체코의 모라비안 신도들은 한마디로 다 복음주의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체코의 모라비안 형제들은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며 고문을 당하거나 살아남기 위해 결국은 그들의 고향에서 도망쳐야했습니다. 1722년 90명 정도의 신도들이 신앙적인 핍박과 박해를 피해서 난민으로 체코를 떠나서 국경을 넘어 인근 독일로 피신하게 되었는데 신앙을 지키기 위해 난민이 된 것입니다.
헤른후트(Herrnhut)는 독일과 체코, 폴란드 국경에 인접한 인구 1200여명의 마을입니다. 이 곳의 영주(백작)였던 진젠도르프가 알고는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기 때문에 자기의 영지(領地)인 헤른후트에 그들 모라비안 난민들의 피신처로 내주며 공동체를 이루며 정착하게 했습니다. 진젠돌프는 백작직을 포기하고 모라비안 공동체를 섬기며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4년 후인 1726년에는 그 수가 약 400명으로 불어났습니다. 그래서 헤른후트의 모라비안 공동체는 후에 독일의 영적 각성을 이끌었습니다. 헤른후트는 ‘하나님의 피난처’ 또는 ‘하나님의 망대(The Lord’s Watch)란 뜻입니다. 오늘의 지상교회는 바로 이 독일의 헤른후트처럼 이 시대의 환난당한 사람의 피난처로서의 사명이 있습니다.
09.21.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