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찬양 팀에 속해 있는 여집사입니다. 찬양팀 멤버 중에 한 여집사와 사소한 일로 다툼과 의견충돌이 있었습니다. 피차 용서하고 관계를 회복해야 할 줄 알지만 용서가 잘 안됩니다. 그 후로 관계가 더 나빠져 결국은 찬양팀을 그만 두게 되었고 예배도 그 집사를 피하기 위해 다른 예배시간을 선택해 드리다가 그것도 힘들어 이제는 교회를 떠나려고 합니다. 목사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토랜스에서 Yoon
A: 교회생활에서 많이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박완서란 교수가 쓴 “행복하게 사는 비결”의 단편 글을 읽어보니 행복은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것이라면서 내 가족과 친척, 친구, 이웃 등 내 주변에 나를 만나는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갖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불행의 원인이 이 인간관계가 원활치 못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라고 글을 썼습니다. 내가 남을 미워하면 반드시 그도 나를 미워하게 되어있다고 했습니다. 인생은 인간관계입니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부딪치며 살다보면 “가끔 내가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내가 남에게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웬만한 것은 인간의 지정의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쉽게 넘어가고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문제는 잘 잊혀지지 않는 상처가 문제입니다. 상처가 오래가면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되면서 깊은 상처가 되고 나중에는 히브리서 12장 15절처럼 마음의 쓴뿌리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괴롭게 합니다. 이것은 용서와 관용의 문제입니다. 교회를 떠나서 피하는 것보다 만나 화해하고 내가 먼저 찾아가 손을 내미십시오. 그것도 힘들면 용서와 화해의 편지를 쓰십시오.
왜 우리 크리스천이 용서하지 못합니까? 아마도 제일 중요한 원인은 첫째, 내가 하나님 앞에서 받은 이 어마어마한 용서의 가치와 의미를 망각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만 달란트 빚진 신하처럼 하나님께 더 큰 용서, 더 큰 사랑, 더 큰 자비, 더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웃에게 용서하고 베푸는데 인색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내가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이 언제나 내가 손해 보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상의 싸움은 때려눕힌 자가 이깁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싸움은 얻어맞은 자가 이깁니다. 자기가 받은 마음의 상처는 용서라는 약으로만 치료될 수 있습니다. 원수를 갚는 자는 원수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원수를 선대하는 자는 원수보다 나은 자입니다. 용서하는 자만이 남을 변화시킬 수가 있습니다.
시몬 게렐이라는 소년은 이웃 집의 배나무에서 배를 하나 훔쳐 땄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그 배나무 주인인 이웃집 할머니가 그 소년 집을 방문했습니다. 게렐은 겁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야단을 치지 않고 큼지막한 배 한 개를 그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다른 손에는 빨간 장미꽃이 있었는데 그 장미로 그 소년의 볼을 톡톡 두드려주며 장미꽃 한 송이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장미꽃으로 가볍게 맞은 소년 게렐은 금새 얼굴이 빨개졌으나 그 할머니의 용서와 관용의 태도에 감격하여 그만 할머니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그는 후일에 커서 미국의 유명한 목사가 되었습니다. 자기 생애에 대한 간증을 할 때는 이 할머니의 용서와 관용이 자기를 이렇게 목사로 만들었다고 간증했습니다.
보스턴에서 목회했던 콘라드 목사를 약 10년간 끈질기게 괴롭혔던 한 교인이 있었습니다. 사사건건 목사를 반대하고 트집을 잡았습니다. 그러다가 이 교인이 서부로 이사했는데 그 뒤에 편지가 날아왔는데 지금까지 자기 행동을 사과한다는 편지였습니다. 콘라드 박사는 너무 기뻐서 이런 전보를 쳤습니다. “Forgiven, Forgotten, Forever”(용서했다, 잊어버렸다, 영원히).
08.23.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