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우리 교회에서는 로마서를 성경공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로마가 기독교를 몇백년 간 무섭게 핍박했는데 갑자기 기독교가 승인됐으며 나중에는 국교까지 됐는지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하버에서 이희은
A: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궁금한 내용입니다. 기독교가 세계 역사에 있어 새로운 지표를 긋는 사건이 4세기에 나타나게 됩니다. 콘스탄틴 대제의 등장입니다. AD 305년 이래로 로마제국에는 네 사람의 권력자가 제국을 분점하여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동방에서는 리시니우스와 막시미누스다이어가 서방에서는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누스가 제국의 권력을 장악하려는 암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는 처남 매부지간이었으나 이제 서방지경의 두 권력자가 권력 장악을 위한 접전은 불가피했습니다. 이미 영국과 고울 지방에서 지지를 획득한 콘스탄티누스는 312년 10월 막센티누스를 제거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진군하였습니다. 그 당시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으며 미트라스라는 종교의 신봉자였습니다. 미트라스는 전쟁의 승리를 가져다준다고 믿는 종교였고 군인들이 선호했던 종교입니다.
전투를 앞두고 있던 어느 날 밤, 종교의식을 행하고 희생제물을 바쳤음에도 승리의 확신이 없던 콘스탄티누스는 예기치 못한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궁정가였던 유세비우스(Eusebius)의 기록에 의하면 전투 전날밤 콘스탄티누스는 “이것으로 승리하리라(In Hoc signo vinces)는 계시와 함께 십자가 환상을 보았다고 합니다. 역사가 락탄 티우스(Lactantius)는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의 상징을 병사들의 방패에 부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환상을 따라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의 상징을 “키”와 “로”를 겹쳐 보이는 문장(紋章)을 그린 깃발을 가지고 임전하였습니다. 이것을 그리스도를 칭하는 그리스어 크리스토스의 첫 두 문자인 키와 로를 겹쳐 쓴 것으로 기독교의 상징이었습니다.
다음날 곧 312년 10월 28일 콘스탄티누스의 군대는 로마 북쪽 테베레 강을 사이에 두고 막센티우스 군대와 접전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군사력의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고 막센티우스는 테베르 강을 건너 도망하다가 밀비안 다리 아래에 떨어져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콘스탄티누스는 서방제국의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는 24세였습니다. 십자가의 환상과 전쟁의 승리를 경험한 콘스탄티누스는 미트라 신을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이듬해 313년 1월 콘스탄티누스는 밀라노에서 기독교의 자유를 허락하는 밀라노 칙령(Edic of Milan)을 발표하고 기독교를 공인하였습니다. 박해시절 압류되었던 재산은 반환되었고 다른 종교의 동일한 접적지위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는 기독교를 공인했을 뿐 아니라 실질적인 혜택도 주었습니다. 관료의 요직에 기독교인들을 임명하고 교회의 재산을 환원하고 유배되었거나 투옥되었던 지도자들이 풀려났습니다. 교회에는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급격한 변화의 현장에서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이렇게 썼습니다. “놀라운 일을 행하신 주님께 새노래로 찬양하라 .어둡고 고통스러운 날이 지난 후 지난날의 무거운 짐을 벗고 광명을 누리게 되었도다” 그러나 정식으로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승인한 사람은 379년 데오도시우스(Theodosius) 황제입니다.
05.18.2019